정경옥

  • 종교·철학
  • 인물
  • 대한제국기
  • 현대
일제강점기, 기독교 신학자이자 목사.
인물/근현대 인물
  • 관련 사건진도 보향단 독립운동 유인물 배포사건
  • 사망 연도1945년 4월 1일
  • 성별남성
  • 주요 경력감리교신학교 교수, 만주신학교 교수
  • 주요 저서기독교의 원리, 그는 이렇게 살았다, 기독교신학개론
  • 출생 연도1903년 5월 24일
  • 출생지전라남도 진도군
집필 및 수정
  • 집필 2023년
  • 이덕주 (감리교신학대학교 은퇴교수)
  • 최종수정 2024년 09월 09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정경옥은 일제강점기 기독교 신학자이자 목사이다. 전라남도 진도에서 출생하였다. 경성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동맹휴학을 주도하고 제적당하였다. 이후 고향에서 항일 비밀결사 보향단을 조직하고 활동하던 중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옥중에서 기독교로 개종하였고 서울 협성신학교와 미국 게릿신학교, 노스웨스턴대학을 졸업한 후 귀국하여 감리교신학교 교수로 부임하여 진보적 신학을 강의하였다.

정의

일제강점기, 기독교 신학자이자 목사.

인적사항

호는 철마(鐵馬)이다. 1903년 5월 24일 전라남도 진도읍 교동리에서 정기욱과 조창예 사이에서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진도 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17년 서울 경성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다가 1919년 3월 3·1독립 만세 시위 및 10월 동맹휴학에 참가하고 제적당했다.

1920년 결혼한 허해덕(1931년 작고), 1932년 재혼한 김염의와의 사이에 8남 6녀를 두었다.

주요 활동

경성고등보통학교에서 제적당한 후 낙향하여 박종협, 박석현, 김인수 등과 항일비밀결사 ‘보향단(補鄕團)’을 결성하였다. 「학생부형제위」(學生父兄諸位), 「옥주동포제위」(沃州同胞諸位) 등 유인물을 제작하여 진도 읍내에 살포했다가 체포되어 1920년 2월 14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징역 6월 선고를 받았다. 목포 형무소 수감 중 기독교로 개종하였고 석방 후 박석현, 박종협 등과 진도읍교회(현 진도중앙교회) 창립에 참여하였다.

1921년 서울 기독교청년회학관에서 영어를 배운 후 일본 유학을 떠났다가 간토 대지진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했다. 1924년 3월 감리교 협성신학교 영문과에 입학하였고 7월 진도 소작인회 창설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1928년 협성신학교 졸업 후 미국에 유학하여 시카고 게릿신학교와 노스웨스턴대학에서 신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1931년 귀국하여 감리교신학교 교수가 되었다.

보수적 장로교 신학자들로부터 ‘자유주의 신학자’란 비판을 받았지만 자신은 한국 신학의 좌표를 ‘향토화(鄕土化)’와 ‘시대화(時代化)’로 정의하고, 신학 노선에 대해 “나는 신앙에서 보수주의요, 신학에서 자유쥬의다.”라는 입장을 취하였다. 1940년 감리교신학교 폐교 후 북만주 사평가의 만주신학교 교장으로 취임했으나 일 년 후 폐교되어 진도로 귀향하였다. 1941년 12월 ‘친미파 스파이’ 혐의로 진도 경찰서에 수 개월 구금되었다. 1943년 2월 광주중앙교회 담임목사로 초빙을 받아 목회를 시작하였다. 일본기독교조선장로교단 전남교구장을 맡아 외견상 일제에 협조하는 모양새를 취하면서도 매일 새벽 교회 청년들을 모아 은밀하게 민족주의 신앙 교육을 실시하였다. 1945년 4월 1일 “날이 곧 밝는다.”라는 유언을 남기고 별세하였다.

학문과 저술

저술로 『기독교의 원리』(감리교회신학교, 1935), 『그는 이렇게 살았다』(평양애린원, 1938), 『기독교신학개론』(감리교회신학교, 1939) 등이 있다.

참고문헌

  • 단행본

  • - 고성은, 『철마 정경옥 생애연구』 (삼원서원, 2017)

  • - 김영명, 『정경옥: 한국 감리교신학의 개척자』 (살림, 2008)

  • - 유동식, 『한국신학의 광맥』 (전망사, 1984)

  • - 『정경옥 저작전집』 4권(감리교신학대학교출판부, 2005)

  • 논문

  • - 선한용, 「정경옥 교수의 생애 재구성에 관한 일고찰」(『정경옥 교수 저작전집: 기독교신학개론』, 삼원서원, 2010)

  • 기타 자료

  • - 이덕주, 「복잡에서 단순으로- 정경옥교수의 영성과 토착화신학」(2021년 진도학회 추계절례회: 철마 정경옥 선생의 삶과 신학세계 세미나 자료집』, 진도문화원, 2021. 12)

  • - 한규무, 「정경옥의 독립운동」(『2021년 진도학회 추계절례회: 철마 정경옥 선생의 삶과 신학세계 세미나 자료집』, 진도문화원, 2021. 12)

주석

  • 주1

    : 1923년 일본의 간토 지방에 발생하여 10만여 명의 사망자를 냈던 큰 지진. 재일 한국인이 폭동을 일으켜 약탈과 방화를 일삼는다는 유언비어가 돌아 수천 명의 한국인이 학살되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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