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동교회

  • 종교·철학
  • 단체
  • 일제강점기
1910년, 서울 대묘동에 설립된 교회.
이칭
  • 이칭마가교회
단체
  • 설립 시기1910년 10월 10일
  • 설립자이원긍
  • 설립지서울 대묘동
  • 소재지서울특별시 강남구 대치동
집필 및 수정
  • 집필 2023년
  • 이덕주 (감리교신학대학교 은퇴교수)
  • 최종수정 2024년 09월 09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묘동교회는 1910년 서울 대묘동에 설립된 교회이다. 연동교회에 출석하던 고위 양반 출신 이원긍, 함우택, 오경선 등 일부 교인들이 천민 출신 교인들과 함께 예배드리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던 차에 연동교회 당회장 게일 선교사의 일방적인 교회 운영에 반발하여 1910년 종묘 서쪽 대묘동에 분립하여 나왔다.

정의

1910년, 서울 대묘동에 설립된 교회.

내용

1910년 10월 10일 서울 연동교회에 출석하던 일부 교인들이 대묘동(현, 봉익동)에 설립한 교회다. 명칭은 교회가 위치한 ‘묘골(廟洞)'에서 따온 것인데 교인들은 “제사지낼” ‘묘(廟)’ 자 대신 “빼어날” ‘묘(妙)’ 자로 바꾸었다. 교회 설립을 주도한 이원긍(李源兢)은 조선 말기 내부협판을 지낸 고위 양반 출신으로 독립협회 사건 때 한성 감옥에 수감되었다가 개종한 후 1903년 출옥하여 연동교회 게일 선교사에게 세례를 받았다. 그는 이상재, 홍재기, 안국선, 김정식, 지석영 등 양반 지식인들과 1905년경 대묘동에 ‘묘골기도소’를 마련하고 독자적으로 성경 공부를 해왔다. 그러던 중 반상(班常) 구별을 중시하는 봉건적 사회 분위기가 남아 있는 상황에서 천민 계층과 함께 예배드리는 것을 불편하게 느끼던 차에 천민 출신을 교회 장로로 세운 연동교회 담임자 게일 선교사의 일방적인 교회 운영에 불만을 가져 이원긍, 함우택, 오경선 등 1백여 명의 교인이 1910년 6월 묘골기도소에서 별도 집회를 시작하였다. 한 달 만에 교인이 2백여 명으로 늘어나 봉익동 19번지에 ㄱ자 한옥 예배당을 건축하였다. 이에 조선예수교장로회 독노회는 서울 안동교회 담임자 한석진 목사를 묘동교회 초대 당회장으로 파견하여 겸임하게 하였다. 이원긍은 1911년 경기충청노회에서 장로 안수를 받았고, 1911년 동양서원에서 펴낸 『신약주석』 시리즈 가운데 『마가복음주석』을 번역, 출간하고 그 판매 수익금을 교회 운영비로 내놓았는데, 그것을 계기로 묘동교회는 '마가교회'로 불리기도 했다. 이로써 묘동교회는 선교사의 지원이나 관리를 받지 않는 자주적이고 주체적인 교회로 자리매김하였다. 그런데 1914년 한석진 목사가 건강상 이유로 사임한 후 교회는 큰 혼란과 갈등에 휘말렸다. 동사 목사(同事牧師)로 있던 제7일안식일교회(재림교회)의 전시열 목사와 일본기독교회 이구치 목사 등의 영향으로 주일 예배를 일요일이 아닌 안식일인 토요일에 드리거나 교회를 일본기독교회에 편입시키려는 시도가 있었다. 이에 1916년 경기충청노회는 묘동교회를 교회 명부에서 제명하였고, 일부 교인은 하교교회를 설립하여 나갔다. 이원긍 장로가 1919년 별세하고 묘동교회 출신으로 평양 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한 김백원 목사가 1920년 12월 묘동교회 2대 당회장으로 부임하면서 혼란이 해소되었다. 이후 일제강점기에 배진성, 전필순, 최석주, 이강원, 최거덕, 강헌집, 해방 후에 김건호, 오덕유, 이금식, 박한용, 정태봉 목사에 이어 2012년부터 이요한 목사가 담임하고 있다. 1993년 교회를 서울특별시 강남구 대치동(도곡로78길 14)으로 옮겨 오늘에 이르고 있다.

참고문헌

  • 단행본

  • - 김영동, 『묘동교회 100년사』 (대한예수교장로회 묘동교회, 2011)

  • - 묘동교회사 80주년 편찬위원회, 『묘동교회 80년사』 (대한예수교장로회 묘동교회, 1990)

  • - 한국기독교사학회 편, 『조선예수교장로회사기 하』 (연세대학교출판부, 1968)

주석

  • 주1

    : 내부대신의 버금 벼슬. 우리말샘

  • 주2

    : 양반과 상사람을 아울러 이르는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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