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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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대한제국기 황성기독교청년회와 일제강점기 도쿄조선기독교청년회에서 활동한 청년 운동가.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62년(철종 13) 8월 6일
사망 연도
1937년
본관
청풍(淸風)
출생지
황해도 해주
주요 경력
황성기독교청년회 수석간사, 도쿄조선기독교청년회 초대총무, 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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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김정식은 대한제국기 황성기독교청년회와 일제강점기 도쿄조선기독교청년회에서 활동한 청년운동가이다. 대한제국기 경무관 출신으로 정치적 사건에 연루되어 수감 중 기독교인이 되었으며, 출옥 후 연동교회를 중심으로 계몽운동에 참여했고, 서울과 도쿄에서 YMCA운동을 주도했다. 무교회주의자들과 교류하면서 일본조합교회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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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대한제국기 황성기독교청년회와 일제강점기 도쿄조선기독교청년회에서 활동한 청년 운동가.
인적사항

김정식의 본관은 청풍(淸風), 호는 삼성(三醒)이다. 1862년(철종 13년) 8월 6일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다. 10대에 동갑인 강씨(姜氏)와 결혼했으며, 금강산에 들어가 생활하기도 했다. 10명의 자녀를 두었으나 모두 일찍 사망했다.

주요 활동

1894년 경찰이 되어 1895년 주1에서 주2으로 승진했으며, 1897년 6품, 1898년 정3품으로 주3. 1898년 11월 독립협회의 시위를 저지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주4을 받고 1899년 경무관에서 물러났으며, 목포 무안항의 경무관에 임명되었으나 곧 물러났다.

1902년 이상재(李商在), 유성준(兪星濬), 홍재기(洪在箕), 이원긍(李源兢) 등과 함께 정치적 사건에 연루되어 한성 감옥에 투옥되었다. 감옥 안에서 『천로역정(天路歷程)』과 『신약 전서(新約全書)』 등 신앙 서적을 읽고 기독교인이 되었다.

1904년 주5 선교사 게일(J. S. 주6에게 세례를 받고 연동교회에 출석했다. 같은 해 연동교회의 교회 학교인 부용회(芙蓉會) 설립을 주도했으며, 출옥 인사들이 중심이 되어 연동교회에서 창립된 계몽 주7 단체인 국민교육회(國民敎育회)에도 참여했다. 같은 해 황성기독교청년회(YMCA)의 한국인 수석 주8로 임명되어 1906년까지 재직하며 한국 YMCA의 초석을 놓았다.

1906년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조선기독교청년회를 세우고 주9 총무에 취임했으며, 이후 도쿄조선 YMCA는 2·8독립선언을 비롯하여 재일 주10 학생 민족 주11의 근거지가 되었다. 1909년 조만식(曺晩植), 정익로(鄭益路) 등과 도쿄조선인교회를 설립했다. 일본의 무교회주의 기독교인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와 친분을 쌓았으며, 이는 이후 김교신(金敎臣), 유영모(柳永模) 등 조선인 무교회주의자들과 교류하는 계기가 되었다.

1916년 귀국하여 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 이사, 조선교육회 주12, 조선민립대학 기성준비회원, 민우회 임원 등을 맡았으며, 1917년 일본 기독교 교파인 조합교회(組合敎會)로 소속을 옮겨 서울 성서교회(城西敎會)를 담임하고 1921년까지 재직했다. 1922년 서울의 기독교, 불교, 천도교 신자들과 우리친목회를 조직했며, 1920년 만주실업 주식회사의 대표 이사에 취임하여 1931년까지 재직하기도 했다.

말년에 자식 없이 부인과 생활하다가 1937년 1월 13일 주13으로 경성 요양원에서 사망했다. 같은 해 5월 『성서조선』은 ‘김정식 선생 기념호’를 발간하였다.

참고문헌

단행본

유동식, 『재일본한국기독교청년회사』 (재일본한국기독교청년회, 1990)
이덕주, 『새로 쓴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개종이야기』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2003)
전택부, 『한국기독교청년회운동사』 (정음사, 1968)

논문

김일환, 「김정식의 옥중 기독교 입교와 출옥 후 활동」 (『한국기독교와 역사』 57, 한국기독교역사학회, 2022)
최기영, 「한말 국민교육회의 설립에 관한 검토」 (『한국근현대사연구』 1, 한국근현대사학회, 1994)

기타 자료

김정식, 「신앙의 동기」(『성서조선』 100, 성서조선사, 1937)
유영모, 「故 三省 김정식 선생」(『성서조선』 100, 성서조선사, 1937)
『조선일보』 (1937.1.15.)
『매일신보』 (1937.1.15.)
주석
주1

구한말에, 경무청에 속한 판임관. 고종 32년(1895)에 두었는데, 경무관 다음 서열로서 30명 이하의 정원을 두었다. 우리말샘

주2

경찰 공무원 계급의 하나. 치안감의 아래, 총경의 위이다. 우리말샘

주3

직위가 종삼품 이상의 품계에 오르다. 우리말샘

주4

허물이나 잘못을 꾸짖고 나무람. 우리말샘

주5

형기를 마치고 감옥에서 석방되어 나오다. 우리말샘

주6

제임스 스카스 게일, 캐나다의 선교사(1863~1937). 1888년 내한하여 선교 활동을 하였고 아펜젤러, 언더우드 등과 성경을 한역(韓譯)하였다. 1898년 최초의 한영(韓英) 사전을 편찬ㆍ출판하였으며, <구운몽>ㆍ<춘향전#GT#따위의 한국 고전을 영역(英譯)하였다. 우리말샘

주7

17~18세기에 유럽에서 일어난 합리주의적 개화 운동. 중세적인 인습과 편견에 젖어 있는 사람에게 자율적이고 합리적인 판단력을 가지게 하는 운동이다. 우리말샘

주8

단체나 기관의 사무를 담당하여 처리하는 직무. 또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 우리말샘

주9

차례로 이어 나가는 자리나 지위에서 그 첫 번째에 해당하는 차례. 또는 그런 사람. 우리말샘

주10

일제 식민지 시기에 일본으로 건너가 거주하게 된 교민을 가리키는 말. 일본에 정착하여 일본 국적을 취득하거나 한국 국적을 유지한 채 살고 있는 동포를 가리키는 재일 교포와는 구별되는 개념이다. 우리말샘

주11

식민지 상태나 종속 상태에서 압박당하는 민족이 지배 민족이나 국가의 압박에서 벗어나 독립하려는 운동. 제이 차 세계 대전 후 급속히 발전하였다. 우리말샘

주12

앞장서서 어떤 일을 할 것을 주장하고 그 방안을 마련하는 사람. 우리말샘

주13

늙고 쇠약해지면서 생기는 병. 우리말샘

집필자
한규무(광주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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