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교육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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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정보
근대사
단체
1904년 8월 이준, 이원긍, 전덕기, 유성준, 박정동, 최병헌 등이 국민교육 실시를 목적으로 설립한 교육 계몽 운동 단체.
이칭
이칭
대한국민교육회
단체
설립 시기
1904년 8월
해체 시기
1907년 11월
설립자
이준, 이원긍, 전덕기, 유성준, 박정동, 최병헌
설립지
서울
소재지
서울
내용 요약

국민교육회는 1904년 8월 이준, 이원긍, 전덕기, 유성준, 박정동, 최병헌 등이 중심이 되어 국민교육 실시를 목적으로 설립한 교육 계몽 운동 단체이다. 교육 구국 운동을 목적으로 설립하여 학교 설립과 교과서 편찬에 힘을 기울였고, 일제의 식민 교육 정책, 을사늑약, 고종의 강제 퇴위 등에 반대하였다.

정의
1904년 8월 이준, 이원긍, 전덕기, 유성준, 박정동, 최병헌 등이 국민교육 실시를 목적으로 설립한 교육 계몽 운동 단체.
설립 목적

1904년 8월 24일 이준(李儁), 이원긍(李源兢), 전덕기(全德基), 유성준(兪星濬), 박정동(朴晶東), 최병헌(崔炳憲) 등은 정치적 문제를 배제하고 일반 국민에 대한 교육 계몽을 주목적으로 한 단체의 필요성을 느껴 국민교육회를 설립하였다.

주요 활동

초대 회장은 이원긍이었으며, 1906년 이준이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국민교육회 임원과 회원들은 독립협회, 만민공동회, 1902년 주1 운동, 1904년 결성된 보안회(保安會) · 주2 등에서 활동하였던 인사들이 주를 이뤘다.

또한, 일부 회원들은 황성기독교청년회, 주3 등 기독교 단체에서도 활동하였다.

국민교육회는 국민교육을 실시하기 위해 학교 설립과 교과서 편찬에 힘을 기울였다. 1905년 8월 보통학교 보광학교(普光學校), 1906년 9월 보통학교 한남학교(漢南學校)를 설립하였고, 1905년 12월에는 교육을 담당할 교사 양성을 목표로 국민사범학교(國民師範學校)를 설립하였다.

국민교육회가 저술, 편찬한 교과서로는 1906년 『 초등소학(初等小學)』, 『대동역사략(大東歷史略)』, 주4이 있고, 1907년 『초등지리(初等地理)』, 주5 등이 있다.

학교 설립과 교과서 편찬 외에 각계 인사들을 회관으로 초청해 ‘생명 재산 보호’, ‘교육 발달’, ‘민지(民智) 개발’ 등을 주제로 정기적으로 연설회나 토론회를 개최하였다.

또한, 회관 내에 법학 강습소를 세워 근대법에 관한 교육 활동을 펼치기도 하였다.

국민교육회는 정치 운동을 배제하고 교육 계몽을 주목적으로 삼았으나, 1905년 9월부터 주6에 일본인 교사를 배치하고 일본어 교과서를 사용하려고 계획하자 이에 반대하는 시위를 주도하였다.

1905년 11월 일진회(一進會)가 대한제국이 일본의 보호국이 되는 것에 찬성하는 합방청원(合邦請願)을 하자, 회장 이원긍의 명의로 반대 의사를 밝혔고,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반대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준, 전덕기 등은 상동교회에서 대책회의를 열고 을사늑약에 반대하는 연명 상소를 하기로 결정하고, 대한문 앞으로 나아갔으나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었다.

1906년 12월 2일 을사늑약에 반대하며 자결한 주7 추도회를 개최하여 다시 한 번 일본의 ‘보호국’이 되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의사를 밝혔고, 1907년 헤이그특사사건 후 일제가 고종 황제를 강제 퇴위시키려 하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 서울 시내 도처에서 여러 단체와 함께 연설하여 시위대를 고무시켰다.

국민교육회는 비정치적 교육 계몽을 주목적으로 설립된 교육 단체였지만, 일제의 식민 교육 정책, 을사늑약, 고종의 강제 퇴위 등에 반대하며 국권 회복을 추구하였다.

회장 이준이 참여한 헤이그특사사건 이후 단체 유지가 어렵게 되면서 1907년 말경 유길준(兪吉濬)이 설립한 흥사단(興士團)에 흡수되어 해체되었다.

참고문헌

단행본

손인수, 『한국근대민족교육의 이념 연구』(문음사, 1988)

논문

신혜경, 「대한제국기 국민교육회 연구」(『이화사학연구』 20-21, 이화여자대학교 사학연구소, 1994)
최기영, 「한말 국민교육회의 설립에 관한 검토」(『한국근현대사연구』 1, 한국근현대사학회, 1994)
조동걸, 「한말계몽주의의 구조와 독립운동상의 위치」(『한국학논총』 11,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1989)

신문 · 잡지 기사

『대한매일신보』
『황성신문』
주석
주1

민영환(閔泳煥), 이준(李儁), 이용익(李容翊)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비밀 결사체.    우리말샘

주2

1904년 9월 보안회에서 협동회로 개칭함.

주3

1897년 9월 상동교회(尙洞敎會) 내에 조직된 청년회.

주4

광무(光武) 10년 6월에 발행하였다고 쓰여 있어 1906년에 간행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대한국민교육회(大韓國民敎育會)에서 편저(編著)하고 발행하였다. 맨 뒷장에 당시 정가(定價)로 신화(新貨) 50전이라고 쓰여 있다. 본문은 한문을 중심으로 하여 한글로 토를 달고 있으며, 간간이 그림을 삽입하여 내용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주5

1907년 7월 국민교육회에서 펴낸 고등 소학교용 교과서로 국한문 혼용체이다. '식물학', '동물학', '광물학' 등 3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삽도를 함께 실어 내용의 이해를 돕고 있다.

주6

일제 강점기에, 심상소학교를 졸업한 아동에게 다시 2년의 보통 교육을 실시하던 학교.    우리말샘

주7

을사늑약 당시 자결한 7인(민영환, 조병세, 홍만식, 이상철, 김봉학, 송병선, 이한응)

집필자
김소영(건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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