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사단(Young Korean Academy, 興士團)은 일제강점기 실력 양성 운동에 의한 항일 운동 단체로 출발하여 해방 후에는 민족사적 과제인 민족 통일, 민주주의 발전, 건전한 시민과 청소년 육성을 위해 힘쓴 사회교육단체이자 시민사회단체이다. 1913년 5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안창호(安昌浩)의 주도로 조선 8도를 대표한 발기인 25명으로 조직되었다. 1937년 동우회 사건으로 해산되었다가 1963년 7월에 부활하여 청소년 수련을 위한 아카데미운동을 전개하는 등 시민운동과 민주화 운동에 크게 이바지했다.
흥사단은 한민족의 부흥을 우선적인 목표로 삼았다. 우리 민족이 앞으로 나아갈 대업의 기초를 준비하기 위해 건전한 인격과 신성한 단결을 위한 무실역행(務實力行)을 강령으로 내세웠다. 행동 강령은 정치 운동을 초월한 한민족의 부흥이다.
흥사단의 전신은 1909년 2월 국내에서 조직된 청년학우회였다. 미국에 건너간 안창호(安昌浩)는 지식, 경제력, 도덕심이 국력을 좌우하는 요인이라 생각했다. 1913년 5월 13일 샌프란시스코 강영소(姜永韶)의 집에서 안창호의 주도로 경기도 홍언(洪焉), 강원도 염만석(廉萬石), 충청도 조병옥(趙炳玉), 황해도 민찬호(閔贊鎬), 경상도 송종익(宋鍾翊), 평안도 강영소(姜永韶), 함경도 김종림(金鐘林), 전라도 정원도(鄭源道) 등 8도 대표에 의하여 창립되었다.
초기에는 이주 한인과 유학생을 중심으로 하는 면학 분위기 조성과 인격 수양, 생활 개선과 경제력 증진 등 한인들의 권익 옹호에 힘썼다. 동맹 수련과 동맹 저축, 『흥사단보』와 『흥사단단기가』 발간 등이 이를 방증(傍證)한다. 중국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흥사단 원동임시위원부를 조직하였다. 난징에서는 미국 등지로 유학을 희망하는 청소년을 위하여 어학 교육을 위주로 하는 동명학원(東明學院)을 운영했다. 이어 서울에 수양동맹회, 평양에는 대성학교 출신을 중심으로 동우구락부를 결성하는 등 새로운 민족 문화 건설을 위해 힘썼다. 두 단체는 수양동우회(1926)로 통합된 뒤 동우회로 개칭하였다가 중일전쟁 1개월 전 동우회 사건으로 강제 해산당하고 말았다. 조직은 와해되었으나 단원들은 동맹 수련과 독립운동을 계속하고 있었기에 광복을 맞이할 수가 있었다.
광복 이후 국내 위원부를 조직하여 선언문, 행동 강령, 훈련 요강 등을 발표함으로써 단체의 세력이 확산되어 대한민국 정부 수립 즈음에 본부를 국내로 이전할 수 있었다. 1969년 8월 19일에 사단법인으로 설립되어 1981년 6월 민족대학 개설, 1985년 3월 도산사상연구회, 1989년 6월 도산아카데미연구원이 창립되었다. 1991년 2월에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를 결성하여 부정 선거 감시 활동을 벌였다. 1992년 5월에 청소년연구원, 1997년 3월에 민족통일운동본부를 설립하였다. 1998년 11월에 도산 안창호 기념관을 건립 및 개관(사단법인 도산기념사업회)하였으며, 2007년에는 독립유공자후손돕기운동본부를 창립하였다.
2021년 현재 국내에는 서울 지부와 부산 지부 등 24개, 미주위원부 산하에 LA 지부‧워싱턴DC 지부‧동남부 지부‧토론토(캐나다) 지부 등 12개, 중국 상하이 지부 등이 있다. 부설 조직은 3개 운동 본부(민족통일본부, 투명사회운동본부, 교육운동본부), 5개 부설 기관(흥사단교육수련원, 흥사단시민사회연구소, 사단법인도산아카데미, 흥사단청소년재단, 사단법인흥사단), 강서 청소년회관, 강남 주민편익시설, 부산 동구 자원봉사센터 등 총 29개 수탁 시설을 운영한다.
흥사단은 무실(務實) · 역행(力行) · 충의 · 용감의 4대 정신을 지도 이념으로, 건전한 민주 시민이 갖추어야 할 덕 · 체 · 지의 삼육(三育)을 기본 덕목으로 하는 인격 · 단결 · 공민의 3대 훈련을 실시했다. 소속 인원들은 자아혁신, 신성단결(神聖團結), 단무봉사, 책임완수, 대공복무(大公服務)를 5대 생활 지표로 삼아 실천하였다. 자유당 정권의 부정과 부패에 대해 금요 강좌와 기관지 『새벽』을 통해 날카롭게 비판했다. 흥사단은 민족 화해와 협력을 위한 6 · 15 남측위원회 참여 등 민족 통일 운동, ‘흥사단 투명상’ 시상 등 투명 사회 운동, 교육 운동, 독립 유공자 후손 돕기, 공명선거 운동, 우리 땅 독도 지키기 운동 등 시민 사회 운동, 청소년 운동에 매진하고 있다.
시민운동의 전성기를 거치면서 흥사단은 활동과 사업의 외연을 넓히면서 공명선거, 사회, 교육, 환경, 교통 등 다양한 분야의 시민운동에 참여하였다. 21세기 사회 변화를 맞이하여 다양한 시민운동에 관여하면서 운동 역량의 한계와 운동의 효율성 문제를 고민하였다. 2003년 흥사단 창립 90주년을 기해 공표된 「흥사단 비전 2013」에서 흥사단 3대 시민운동을 분명하게 제시했다. 오늘날에도 목표를 향한 활동이 각 분야에서 전개되고 있다.
흥사단은 한국사에서 유례가 없는 110년의 매우 길고 오랜 역사를 가진 비종교, 비영리, 시민 사회단체로서 의미가 있다. 민족의 독립, 근대 사회 형성, 시민 의식의 함양과 사회 교육, 민주화와 평화 통일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사회 변혁과 미래 지향적인 발전을 위한 중장기적인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다문화 사회,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대립과 민족이라는 울타리를 넘어 새로운 통합과 글로벌 가치 창조를 위한 활동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