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항은 일제강점기, 경기도 안성군 죽산 지역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한 독립운동가이다. 죽산 지역 독립만세운동은 1919년 4월 1일부터 3일까지 격렬하게 전개되었다. 죽산 장날인 4월 2일에 시위 군중은 2,000여 명으로 늘어나 이죽면사무소와 죽산경찰관주재소 앞에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김재항은 4월 2일과 3일 삼죽면 덕산리 주민들과 만세운동을 하다가 3일 일본 수비대의 총탄에 맞아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1874년 3월 17일 경기도 안성군 이죽면(二竹面) 죽산리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며 주민들에게 항일의식을 일깨웠다.
안성군에서는 3월 11일 안성읍내의 독립만세운동을 발단으로, 죽산 · 양성 · 원곡 일대에서 연이어서 격렬히 전개되었다. 죽산 지역에서는 1919년 4월 1일부터 3일까지 격렬한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4월 1일 이죽면, 4월 2일 일죽면(一竹面)과 이죽면, 3일에는 이죽면과 삼죽면(三竹面)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1919년 4월 1일 이죽면에서는 이기훈(李起薰), 윤상구(尹商求), 이응식(李應植), 최창달(崔昌達) 등이 100여 명의 군중을 이끌고 이죽면사무소와 죽산경찰관주재소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죽산 장날인 4월 2일에는 2,000여 명의 시위 군중이 죽산리 시장과 죽산경찰관주재소 앞에서 독립만세운동을 격렬하게 펼쳤다. 이날 저녁에는 일죽면의 오순경(吳順景) 등 200여 명이 일죽면사무소로 시위행진을 한 뒤, 다시 이죽면 주천리(注川里) 주재소로 나아갔다.
4월 3일에는 삼죽면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주민 300여 명이 면사무소를 공격하고, 격렬한 만세시위를 벌이자, 일본 수비대의 발포로 2명이 순국하고 5명이 부상을 입었다. 김재항은 1919년 4월 2일 삼죽면 덕산리(德山里) 마을 사람들을 인솔하고 4㎞ 떨어진 이죽면 죽산리에서 독립만세를 이어 가다가 4월 3일 일본 수비대의 총탄을 맞고 순국하였다.
2014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