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김순서는 일제강점기, 경기도 안성군 원곡면 · 양성면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4월 1일 원곡면 · 양성면 주민이 연합한 독립만세시위를 이끌었다. 시위 군중이 2,000여 명으로 늘어나자 김순서는 앞장서서 원곡면사무소, 순사주재소 등의 문서와 물품 등을 불태우고 양성우편소의 전화선을 절단하는 등 일제 식민기관에 직접적인 무력을 행사하였다. 일본 군경에 체포되어 징역 10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정의
일제강점기, 경기도 안성군 원곡면 · 양성면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인적 사항
주요 활동
3월 29일부터 3월 31일까지 만세시위는 계속 전개되었다. 4월 1일 저녁 8시경 등불이나 횃불을 들고 원곡면사무소에 집결한 인원은 1,000여 명에 달하였다. 시위 군중은 원곡면과 양성면 경계인 성은고개에서 나뭇가지로 몽둥이를 만들거나 작은 돌을 주어 양성면 동향리로 나아갔다. 양성면민과 연합한 시위 군중은 2,000여 명으로 늘어났다.
김순서는 시위대를 이끌고 원곡면사무소와 순사주재소의 공문서와 물품 등을 불태우는 한편, 양성면우편소 등을 파괴하고 전화선을 절단하였다. 이어 일본인 잡화상 집과 일본인 대금업자 집을 습격하여 가옥을 파괴하고 가구류 등을 불태웠다. 원곡면사무소를 습격하여 소각하고 아침을 먹은 후, 평택의 경부선 철도를 파괴하려 하였으나 일본수비대가 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모두 피신하였다.
헌병 장교를 지휘관으로 한 검거반은 현지에서 주로 야간에 검거를 실시하여 약 800명을 검거하였다. 이 와중에 19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으며, 17개 마을에서 총 276호의 가옥을 방화하는 만행을 저질렸다. 일본 군경에 체포되어 징역 10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1921년 1월 21일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단행본
- 『서안성지역 독립운동자료집』(안성독립운동기념관, 2020)
- 이정은, 『원곡 · 양성 3 · 1운동』(원곡 · 양성 3 · 1운동선양회, 1992)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 5(국가보훈처, 1972)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2(국가보훈처, 1971)
- 『한국독립운동사』(국사편찬위원회, 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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