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일제강점기 때, 천도교 전교사로 활동하며 구국동지회에 가입하였고, 수원의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고주리 학살사건에 의해 사망한 천도교인·독립운동가.
인적 사항
주요 활동
발안 장터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는 면사무소와 발안주재소를 습격하는 등 일제 식민기관에 직접 타격을 가하였다. 당시 수원 지역 만세운동은 일본인 경찰 2명을 처단할 만큼 격렬한 양상을 보였다. 일제는 경찰과 군대를 증파하여 이 일대 촌락과 한국인에 대한 방화, 체포, 고문 등을 하면서 대대적인 보복에 나섰다. 김성열도 주동자로 체포되어 수원경찰서로 연행되어 고문당하였으나, 곧 석방되었다.
4월 15일 오후 2시경에 일본군 아리타 도시오[有田俊夫] 중위가 인솔한 10여 명의 군경이 제암리에 도착하였다. 이들은 주민들에게 전달할 사항이 있다고 속이고 23명을 제암리교회에 모이게 했다. 주민들이 지시에 따라 교회 안으로 들어가자 아리타는 출입문과 창문을 모두 잠그고 집중사격을 명령하는 동시에 불을 놓아 교회를 태워버렸다. 이때 주민들 23명이 교회 안에서 무고하게 학살되었으나 유해는 군경의 방해로 가족조차 접근할 수 없었다.
고주리로 이동한 일본 군경은 김성열 일가 6명을 검거하고 학살하여 시신마저 불태웠다. 선교사 스코필드(F. W. Schofield)는 시신을 수습하여 공동묘지에 안장하였다. 특히 참혹한 현장을 사진과 기록으로 남겨 일제의 야만적인 탄압의 실상을 폭로함으로써 이 사건은 세계적인 이목을 받았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원전
- 「3 · 1운동시 피살자 명부」(국가기록원, 1953)
단행본
- 박환 · 조규태 · 황민호, 『화성출신 독립운동가』(화성시 · 수원대학교동고문화연구소, 2006)
- 박환 · 조규태, 『화성지역 3 · 1운동 유적지 실태조사 보고서』(화성시 · 수원대학교박물관, 2003)
- 김선진, 『일제의 학살만행을 고발한다』(미래문화사, 1983)
- 전동례 구술 · 김원식 편집, 『두렁바위에 흐르는 눈물』(뿌리 깊은 나무, 1981)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2(국가보훈처, 1971)
- 『한국독립운동사』(국사편찬위원회, 1966)
논문
- 이덕주, 「3 · 1운동과 제암리사건」(『한국기독교와 역사』 7, 한국기독교연구소, 1997)
인터넷 자료
- 공훈전자사료관(https://e-gonghun.mpva.go.kr)
주석
-
주1
: 예전에, 지금의 수원시와 화성시, 오산시를 아울렀던 군. 대한민국 수립 이후 수원읍이 시로 승격하여 분리되면서, 화성군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우리말샘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