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일제강점기 「백화」, 「고향 없는 사람들」, 「봄 안개」 등을 저술한 소설가.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3년여를 영광에 머무르는 동안 시조작가 조운(曺雲) 등과 사귀면서 본격적인 문학 수업을 하였다. 1925년 「추석전야(秋夕前夜)」가 이광수(李光洙)에 의하여 『조선문단(朝鮮文壇)』에 추천되었다. 그러나 학업을 계속하기 위하여 상경, 1926년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신학년제 4년)를 졸업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니혼여자대학[日本女子大學] 영문과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김국진(金國鎭)과의 혼인 문제 등 개인 사정으로 1929년 3학년을 수료하고 귀국하였다.
1932년 「하수도공사(下水道工事)」가 이광수에 의하여 『동광(東光)』에 다시 추천되어 작가 생활을 재개하였다. 그 해첫 장편소설 「백화(白花)」를 『동아일보』에 연재하기도 하였다. 그 뒤 1938년까지 작품 활동을 계속하는 동안 20여 편에 이르는 소설을 발표하였다. 거의가 일제의 침탈로 고통받는 도시 노동자나 서민 그리고 농민을 다룬 것이어서 세인의 주목을 받았다.
그 가운데서도 「하수도공사」 · 「비탈」(新家庭, 1933) · 「헐어진 청년회관」(靑年文學, 1934) · 「불가사리」(新家庭, 1936) 등에는 이념적 세계관을 가진 인물을 등장시켜 불법을 자행하는 일본인이나 부당하게 치부한 사람들에게 항거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등 독특한 작품세계를 구축해나갔다.
그녀가 이러한 작품을 쓰게 된 데에는 오빠 제민(濟民)과 남편 김국진 등의 영향을 받은 듯하다. 그러나 그녀의 이러한 작품세계도 나날이 악화되어 가는 객관적 정세 때문에 더 이상 심화되지 못하였다. 그녀의 관심은 일제침탈로 가중되는 가난과 함께 해마다 되풀이되는 자연재해 때문에 더욱 비참한 삶을 영위해야 하는 농민들에게로 쏠렸다.
이러한 작품으로 「논 갈 때」(文學創造, 1934) · 「홍수전후(洪水前後)」(新家庭, 1934∼1935) · 「한귀(旱鬼)」(朝光, 1935) · 「고향 없는 사람들」(新東亞, 1936)과 같은 소설을 남기게 되었다. 약자의 편에 서기를 표방하고 줄기차게 이어온 그녀의 작품 활동도 1938년「중굿날」을 발표하고는 조국 광복까지 침묵을 지키기에 이른다.
이 무렵 그녀는 출옥한 뒤 간도(間島)로 가버린 김국진과 이혼하고 천독근(千篤根)과 재혼하였다. 광복이 되자 1946년『민성』에 단편 「봄 안개」를 발표하면서 또다시 왕성한 작품 활동을 재개하였다. 그러나 그녀의 작품세계는 광복 전의 그것과 너무나도 다른 것이었다. 장편소설에 의욕적이었던 그녀의 작품세계는 흔히 대중성을 도입하여 서민들의 세대의식이나 남녀간의 애정문제 등을 다룬 것으로 이야기되고 있다.
광복 후 주요 작품으로는 단편소설에 「광풍(狂風) 속에서」(서울신문, 1948) · 「샌님 마님」(現代文學, 1965) 등이 있고, 장편소설에 「고개를 넘으면」(한국일보, 1955∼1956) · 「사랑」(한국일보, 1956∼1957) · 「벼랑에 피는 꽃」(聯合新聞, 1957∼1958) · 「바람뉘」(女苑, 1958∼1959) 등이 있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 「일제강점기 한국여류소설 연구」(서정자, 숙명여자대학교박사학위논문, 1987)
- 「1930년대 한국여류소설에 있어서의 빈궁의 문제」(채훈, 『아세아여성연구』 23, 1984)
- 「해방기 전후의 박화성 문학 활동 연구」(남은혜, 『여성문학연구』 58,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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