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성적순례 ()

현대문학
문헌
1948년 현진건이 단군유적을 순례하고 돌아와 발표한 수필집.
정의
1948년 현진건이 단군유적을 순례하고 돌아와 발표한 수필집.
개설

단군유적을 순례하고 돌아와 발표한 글이다. 1932년 7월 29일부터 11월 9일까지 51회에 걸쳐 『동아일보』에 연재되었고, 1948년 예문각(藝文閣)에서 단행본으로 발간하였다.

단군성적순례는 당시 동아일보사가 단군입론(檀君立論)에 앞장서는 한편 단군릉수축운동에 참여하면서 기획한 것으로, 제1차는 1932년 7월 8일부터 22일까지 묘향산·평양·강동·강서·구월산 등지에 걸쳐 이루어졌다. 제2차는 1932년 10월 23일 강화도일대에 걸쳐 이루어졌는데, 이때 작자가 특파원으로 파견되었다.

내용

순례길에 오른 작자는 우선 안주(安州)의 백상루(百祥樓)에서 수나라의 백만 대군을 무찌른 살수대첩(薩水大捷)의 감회에 젖은 것도 잠시, 세 토막 난 체 흩어져 있는 을지문덕(乙支文德)의 석상을 보고는 너무나도 무참한 현실에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만다.

이어 묘향산에 있는 단군굴을 찾은 작자는 단군의 위패 앞에 무릎을 꿇고 우리들에게 남겨주신 위대하고 찬란한 문화적 유업이 잘 보존되기는커녕 조락한 채 버려져 있는 사실에 대해 몸 둘 바를 모른다. 작자는 “무슨 낯으로 무슨 염의로 무슨 주제로 여기 왔는고.”라고 자책한다.

작자의 행보가 대박산(大朴山)에 있는 단군릉, 구월산에 있는 단군대, 마니산에 있는 제천단으로 이어질 때마다 송구스럽고 한탄스러움은 그 도를 더해 가기만 한다.

의의와 평가

이 순례기가 쓰여진 1932년은 일제가 상해사변(上海事變)을 일으킨 뒤를 이어 괴뢰 만주국을 건립하면서 대륙 침략의 야욕을 획책하던 시기였다. 그러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동아일보사가 단군릉수축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한편 단군성적순례를 기획하고 사회부장인 작자를 특파원으로 파견했다는 것은 특별한 뜻을 지니는 일이었다고 할 수 있다.

작자가 평소 민족주의적 경향의 작품을 많이 발표해왔고, 또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고 1932년 6월 10일 출옥한 셋째 형 현정건(玄鼎健)을 병석에 눕혀놓고 순례길에 올랐기 때문인지 단군을 흠모하고 국토를 아끼는 충정으로 가득 차 있는 작자의 문장은 동아일보사가 펼치는 단군관계사업과 상호 호응하여 자칫 가라앉으려는 민족혼을 분기시키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고 믿어지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현진건소설연구(玄鎭健小說硏究)』(현길언, 삼우출판사, 1988)
『동아일보사사(東亞日報社史) 1』(동아일보사,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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