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후

  • 역사
  • 인물
  • 개항기
  •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 때, 구국동지회를 결성하여 계몽교육을 전개하였으며, 수원의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제암리 학살사건에 의해 사망한 개신교인·독립운동가.
인물/근현대인물
  • 대표 상훈건국훈장 애국장
  • 본관순흥(順興)
  • 사망 연도1919년 4월 15일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89년 8월 10일
  • 출생지경기도 수원
집필 및 수정
  • 집필 2020년
  • 정혜정 (원광대학교 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 최종수정 2022년 11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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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안종후는 일제강점기, 경기도 수원군 향남면 발안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중순부터 수원 지역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특히 4월 3일과 5일의 만세운동은 면사무소가 파괴되고 일본 순사가 피살되는 등 격렬하게 전개되었고, 일제는 그에 대한 보복으로 4월 15일 시위 주동자를 제암리 교회에 몰아넣고 학살과 방화를 자행하였다. 이때 제암리 교회에서 순국하였다.

정의

일제강점기 때, 구국동지회를 결성하여 계몽교육을 전개하였으며, 수원의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제암리 학살사건에 의해 사망한 개신교인·독립운동가.

인적 사항

경기도 수원 출신으로, 본관은 순흥(順興)이다. 1889년(고종 26) 8월 10일 출생하였고, 1905년(광무 9) 선교사 아펜젤러(H. G. Appengeller)의 전도를 받아 기독교에 입교하여 수원 지역에 감리교를 전파하였다.

3 · 1운동 이전부터 천도교 김성열(金聖烈), 제암리 교회 권사였던 홍원식(洪元植)과 함께 구국동지회(救國同志會)를 결성하고 서재(書齋)를 세워 계몽교육에 앞장섰다. 1919년 4월 15일 제암리에서 3 · 1운동 주동자에 대한 학살이 자행될 때 사망하였다.

주요 활동

수원 지역의 장안면과 우정면의 3 · 1운동은 백낙렬(白樂烈), 김성열, 안종후(安鍾厚)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백낙렬과 김성열은 천도교 책임자로서 천도교 조직을 통해 수원의 전 계층을 일원적으로 조직화하였고, 안종후는 기독교 측의 대표적인 인물로서 천도교와 합세하여 3 · 1운동을 전개하였다.

백낙렬, 안종후 등은 서울에서 3 · 1운동이 일어나자 서울로 올라와 직접 만세시위에 참가하고 귀향하여 만세운동을 준비하였다. 당시 수원의 만세시위는 4월 3일과 4월 5일 발안장을 이용하여 가장 고조되었는데, 이날 시위로 안종후를 비롯해 다수가 수비대에 붙잡혀 주재소에서 고문을 당하였다.

일제는 지속적으로 탄압을 가하였고, 4월 13일 육군 보병 79연대 소속의 아리타 도시오[有田俊夫] 중위가 이끄는 일본군이 발안에 도착하였다. 4월 15일 순사보 조희창(趙熙彰)과 사사카[佐板] 등의 안내를 받으며 제암리로 들어와 3 · 1운동의 주동자로 파악된 천도교도와 기독교도 30여 명을 제암리 교회에 몰아넣고 방화와 총격을 가하였다. 이때 안종후도 불에 타서 순국하였다.

일제의 만행은 캐나다 선교사 스코필드(F. W. Schofield)에 의해 「수원에서의 잔학행위에 관한 보고서」가 작성되어 본국에 알려졌다. 또한, 일부 양식 있는 일본인들조차 분격케 하여 『재팬 애드버타이저(The Japan Advertiser)』와 『재팬 크로니클(The Japan Chronicle)』 등은 학살 사진과 목격자의 증언까지 곁들여 상세히 보도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 단행본

  • - 『독립유공자공훈록』 2(국가보훈처, 1986)

  •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2(국가보훈처, 1971)

  • - 이병헌, 『3 · 1운동 비사』(시사시보사출판국, 1959)

  • 논문

  • - 성주현, 「수원지역의 3 · 1운동과 제암리 학살사건에 대한 재조명」(『수원문화사연구』 4, 수원문화사연구회, 2001)

주석

  • 주1

    : 헨리 거하드 아펜젤러, 미국의 선교사 · 교육가(1858~1902). 한국 최초의 감리교 목사로 내한하여 배재학당을 세우고, 기독교 잡지 및 성경 번역 사업에 참여하였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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