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일제강점기 때, 수원의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했던 천도교인 안종옥의 아들로, 제암리 학살사건에 의해 사망한 독립운동가.
인적 사항
주요 활동
4월 3일 오전 11시 조선 민중들은 수촌리 천도교 전교실(傳敎室)에서 만든 태극기와 깃발을 들고 쌍봉산에 1,000여 명이 군집하여 만세를 부르고 독립의지를 불태웠다. 그리고 우정면으로 가서 면사무소를 파괴한 뒤, 화수리 주재소로 몰려가 독립만세를 불렀다.
이때 순사 가와바타 도요타로[川端豊太郞]가 도망가며 쏜 총에 천도교인 여러 명이 피격되었고, 이에 격분한 민중들에 포위된 가와바타는 처단되었다. 그에 대한 보복으로 일제는 살인, 체포, 고문, 방화, 구타, 그리고 종교시설뿐만 아니라 촌락의 대부분을 소각하는 악행을 저질렀다.
4월 13일 일본군 육군 보병 79연대 소속의 중위 아리타 도시오[有田俊夫]가 보병 13명을 이끌고 발안으로 들어왔다. 발안 내 다른 지역의 시위 주도자들은 2차에 걸친 검거 작전으로 대부분 체포된 상태였지만, 발안 시위를 주도하였던 제암리 주도자들을 체포하지 못하자 아리타는 제암리 진압을 시작하였다.
4월 15일 아리타는 부하 11명과 순사 1명, 순사보 조희창(趙熙彰)과 사사카[佐板] 등의 안내를 받으며 제암리에 도착, 3 · 1운동의 주동자였던 천도교와 기독교도들을 제암리 교회에 몰아넣고 방화와 총격을 가하였다. 이때 안종엽(安鍾燁)도 아버지 안정옥과 함께 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단행본
- 『경기도 항일운동 인명록』(경기문화재단, 2020)
- 『수원시사』(수원시사편찬위원회, 2014)
- 이병헌, 『3 · 1운동 비사』(시사시보사출판국, 1959)
논문
- 이동근, 「‘제암리 학살사건’을 통해 본 일제의 폭력성과 식민지 인권」(『수원역사문화연구』 5, 수원박물관, 2015)
- 성주현, 「수원지역의 3 · 1운동과 제암리 학살사건에 대한 재조명」(『수원문화사연구』 4, 수원문화사연구회,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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