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3·1운동 ( )

근대사
사건
1919년 3·1운동 때 경기도 수원시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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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정의
1919년 3·1운동 때 경기도 수원시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
개설

수원시 내의 독립만세운동은 1919년 3월 하순에서 4월 초에 걸쳐 전개되었다.

경과와 결과

이때의 운동 양상은 전반적으로 격렬한 편이었다.

대표적인 독립만세운동은 장안면민과 우정면민들이 연합해 전개한 4월 3일의 만세운동이었다. 이 독립만세운동은 차희식(車喜植)·차병혁(車炳爀) 등이 계획해 장안면 덕정리 뒷산에서 횃불 시위로 시작되었다. 이들은 2,000여 명의 시위군중과 석포리 조암(朝巖) 장터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독립만세를 외쳤다.

그리고 장안면사무소로 가서 면장 김현묵(金賢默)에게 만세운동에 참여할 것을 권유하고 면사무소를 파괴하고, 인근의 쌍봉산(雙峰山)으로 올라가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고, 다시 우정면사무소로 시위, 행진하였다.

우정면사무소에서 서류를 파기하고 건물을 파괴, 방화한 시위군중은 오후 5시경, 몽둥이를 가지고 화수리에 있는 경찰관주재소를 습격하였다. 공포를 발사하며 저지하는 일본경찰과 투석전을 벌여 양측에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이 날의 만세운동으로 차희석·이영쇠 등 27명의 시위군중이 일본경찰에 붙잡혔다.

향남면 제암리에서는 일본군경에 의한 끔찍한 살륙이 자행되었다. 4월 15일 오후 2시경, 일본군 중위 아리다(有田後夫)가 인솔한 20여 명의 일본군경이 제암리에 도착해, 4월 5일 발안(發安) 장날의 독립만세운동에서 일본인 경찰부장이 죽은 사건에 대한 보복응징을 하였다.

그들은 민간인에게 알릴 것이 있다고 속여 기독교인·천도교인 약 30명을 제암리교회에 모이게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농민들이 교회에 모이자, 교회의 출입문과 창문을 모두 걸어 잠그고 집중사격을 감행하였다. 이때 한 부인이 안고 있던 어린아기를 창밖으로 내놓으며 아이만은 살려달라고 애원했지만 아이마저 찔러 죽였다.

끔찍한 학살을 자행한 그들은 증거를 없애기 위해 교회를 불질렀는데, 아직 살아 있던 사람들은 불에 타죽었다. 이 만행으로 28명이 죽었다. 그 밖에도 일본군경은 교회건물과 민가 등 31호에 방화하는 만행을 계속했다. 이런 만행은 외국 선교사들의 분노를 자아냈고, 양심있는 일부 일본인까지도 분격하게 하였다.

영국인 선교사 스코필드(Schofield, F. W.)는 현장을 사진으로 찍어 「수원에서의 잔학행위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해 미국으로 보냈다. 일본의 영자신문 『재팬 애드버타이저(Japan Advertiser)』·『재팬 크로니클(Japan Chronicle)』 등은 목격자의 증언과 학살사건을 게재해 소상히 보도하였다.

또한, 일본기독교회동맹에서도 대표를 현장에 파견, 일본인의 반성을 촉구하였다. 일본인 영문학자 사이토(齋藤勇)는 현장을 답사한 뒤 「어떤 살육사건」이라는 장편시를 발표해 지성인의 통분을 읊었다.

이 밖에도 수원시 내에서는 3월 26∼28일에 송산면 일대에서, 29일 성호면오산(烏山)에서 각각 격렬한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한편, 3월 29일에는 수원기생조합의 김향화(金香花)가 자혜병원(慈惠病院)으로 가던 중 여러 기생을 주도, 일제히 독립만세를 외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삼일(三一)운동』(김진봉, 민족문화협회, 1980)
『3·1운동』(김진봉,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77)
『독립운동사자료집』 5(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2)
『독립운동사』 2(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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