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원식

  • 역사
  • 인물
  • 개항기
  •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 때, 수원의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했다가 제암리 학살사건에 의해 사망한 군인·독립운동가.
인물/근현대 인물
  • 관련 사건제암리학살사건
  • 사망 연도1919년 4월 15일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77년(고종 14)
  • 출생지경기도 화성 향남읍 제암리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진봉 (충북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일제강점기 때, 수원의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했다가 제암리 학살사건에 의해 사망한 군인·독립운동가.

개설

경기도 화성 향남읍 제암리 출신.

생애 및 활동사항

한말 군인으로 1907년의 군대해산에 반대하여 일본군과 직접 대결하다가 부상하여, 고향인 제암리로 내려와 김성렬(金聖烈)·안종후(安鍾厚) 등과 구국동지회를 조직하여 활약하였다.

이 사실을 수사하기 위하여 파견된 일본헌병 2명을 살해하고 피신생활을 하던 중 3·1운동을 맞았다. 4월 5일 발안 장날을 이용하여 안상용(安相容)·안진순(安珍淳) 등 1,0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는데, 일본경찰의 무차별 사격으로 3명이 부상하였다.

이에 군중이 격노하여 투석으로 맞서 순사부장을 살해하였다. 이 후 수원에서 많은 헌병과 경찰이 파견되어 대대적인 검거작업을 벌였는데, 이 때 수원경찰서에 연행되어 모진 고문을 당하고 석방되었다. 그 뒤 제암리 일대는 일본헌병과 경찰에 의한 삼엄한 경비 속에 있었다.

4월 15일 오후 2시경 일본군 중위 아리타[有田俊夫]가 인솔한 군경이 제암리에 도착, 민간인에게 알릴 일이 있다고 속여 기독교인·천도교인 30여명을 제암리 교회에 모이게 하였다. 잠시 뒤 농민들이 교회에 집합하자, 아리타는 출입문과 창문을 잠그게 하고 집중사격을 명하였다.

이때 교회 안에서 죽은 사람이 22명, 뜰에서 죽은 사람이 6명이었는데, 그도 아내와 함께 순국하였다. 이 만행은 외국 선교사들의 분노를 샀는데, 특히 스코필드(Schofield, F. W.)는 현장사진을 찍어 미국으로 보내기도 하였다.

상훈과 추모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 『독립운동사』2(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 - 『삼일운동비사』(이병헌, 시사시보사, 1959)

  • - 「3·1운동」(김진봉, 『교양국사총서』31, 1977)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