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일제강점기 때, 미국으로 노동 이민하여 흥사단을 조직하고,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 총회장, 독립신문사 하와이 지국장 등을 역임한 언론인·독립운동가.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또한 1906년에는 윤병구·이태수·강영소 등과 호놀룰루에서 공진회(共進會)라는 국권회복운동 단체를 결성하였고, 1910년 국민회(國民會)가 대동보국회(大同保國會)와 합동하여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를 결성하였을 때 대한인국민회 하와이지방총회 총무를 맡아 활동하다가, 미본토로 이주하여 1911~1912년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 서기, 1912~1914년 대한인국민회 샌프란시스코지방회 대의원·학무원 등을 각각 역임하였다.
1912년 3월에는 신한민보사 사무원으로 있었고, 1913년 5월 13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안창호 등과 흥사단(興士團)을 조직하였다. 1914~1915년 북미지방총회 총무를 맡았으며, 1916년과 1920년에는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총회장을 역임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난 후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에서는 독립운동의 연락과 일치된 행동방침을 마련하기 위해 강영소와 황사용(黃思溶)을 하와이에 특파하였다. 이들은 1919년 6월 4일 하와이에 도착하여, 하와이지방총회와 대조선독립단의 합동에 노력하여 그 해 7월 18일 합동식을 거행하게 하였다. 그 후 강영소는 1922년 신한민보사 편집장과 독립신문사 하와이 지국장을 맡았고, 1930년 2월 시카고 대한인공동회 재무, 1930년 11월에는 신한민보사 시카고 지국장을 지냈다. 이후 강영소는 시카고 지방으로 이거하여 그 곳에서 15년 동안 한인사회와 독립운동에 매진하다가 1934년 8월 별세하였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자료집』제9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5)
- 『독립운동사자료집』제8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 『신한민보』(1909.2.10)
- 『공립신보』(1909.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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