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년 을사조약(乙巳條約)의 늑결(勒結), 1907년 헤이그특사사건(Hague, 海牙特使事件)에 이어 광무황제(光武皇帝: 高宗)의 강제퇴위, 정미조약(丁未條約) 체결, 군대해산 등의 사태가 발생하자, 1907년 하와이 한인들이 기울어져 가는 국권을 회복시키고자 결성한 단체이다.
광무황제가 일제에 의해 강제로 퇴위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하와이 한인들은 먼저 오아후(Oahu)섬 에와(Ewa)에서 친목회를 조직하고 속쇄판으로 신문을 간행하였다. 그리고 카우아이(Kauai)섬 마카웰리(Makaweli)에서는 자강회(自彊會)를 조직하였고, 마우이(Maui)섬의 한인들은 의성회(義誠會)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정미조약의 체결을 하와이의 한인들은 ‘정변’으로 표현하면서 이에 적극 대응하고자 하였는데, 그 대표적인 단체가 1907년 7월 22일 하와이섬 올라아에서 조직된 국민동맹회(國民同盟會)다.
국민동맹회의 창립 취지는, “위급한 때를 당하여 뉘가 강개한 마음으로 의로운 일에 대하여 일심치 아니하리오. 우리 등도 대한국민의 분자라. 이같이 비참한 정변을 듣고 일시에 모인 자 백여인이 하늘을 가르쳐 맹서하고 한 지방회를 창립하였다”라고 하였다. 이처럼 국민동맹회는 헤이그특사사건 직후 광무황제가 강제퇴위되고, 정미조약이 체결되던 상황에서 조직하였던 것이다.
1907년 9월 『대한자강회 하와이지회 월보』 제1호에도 “요새 하와이에도 각향 사회가 처처에 일어나서 동맹회라, 공진회라, 친목회라, 자강회라, 여러 가지 회가 일어나서 서로 잠을 깨우며 열심을 분발하고 분기를 가다듬어 합심 단체하여 자유를 찾고 독립을 굳게 하기로 사람마다 결심하니 어찌 기쁘지 아니하리오”라고 정미조약을 전후한 시기 하와이 한인들의 국권회복운동에 대해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