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실(務實)’이란 ‘실(實)’을 힘쓰자는 뜻이고 ‘실’은 진실·성실, 거짓 없는 것을 말하며, ‘역행(力行)’은 ‘행(行)’을 힘쓰자는 것이다.
동양사상에서는 ‘비성(非誠)이면 무성(無成)’이라 하여 성을 마음의 근본자세로 삼았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은 성실을 천명하여 역행에까지 실현하는 것이 위학(爲學)의 근본이며 사람된 도리라고 생각하여 왔다.
또한 인간의 존엄성을 하늘에 견주어 생각했음은, 인간의 참되려는 노력이 하늘의 진실무망(眞實無妄)과 통한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성(誠)에 대한 이이(李珥)의 사상뿐만 아니라, 성의(誠意)를 궁극적 신조로 삼았던 정약용(丁若鏞)을 비롯한 실학자들의 사상에서도 성은 크게 강조되었다.
이와 같이 계승, 전개되어온 성실본위의 무실역행사상은 안창호(安昌浩)에 이르러 더욱 구체화되어, 실생활에 적용하려는 일련의 노력이 전개되었다.
우리 민족이 스스로의 힘으로 나라를 지키고 깨어나는 길은 자아혁신·자기개조를 통하여 민족혁신·민족개조를 이루는 데 있다고 믿은 안창호는 자신이 설립, 조직한 대성학교(大成學校)·청년학우회·흥사단 등을 통하여 이러한 사상을 널리 보급시키고자 하였다. 그의 무실역행사상 및 전개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참됨은 알맹이가 들어 있기에 실(實)이 붙은 성실이요, 거짓은 속이 비어 있기에 허(虛)가 붙은 허위(虛僞)라고 하여, 대성학교 학생들에게 ‘참되기’와 ‘거짓이 없을 것’을 가르치며 위(僞)와 가(假)를 배격하였다.
약속을 지키는 것, 집합시간을 지키는 것이 모두 성실의 공부요, 약속을 어기는 것, 시간을 지키지 않는 것은 허위의 실천이라고 하였다.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에 거짓이 없고 참된 것이 무실이기 때문에 참의 정신, 참의 실천, 참의 도덕으로 우리 민족을 교육시켜 갱생시키고자 하였다.
안창호가 말한 역행은 힘써 행하라는 말이 아니라, 행하기를 힘쓰라는 말이다. 즉 공리공론의 허식 명분론을 버리고 실천궁행(實踐躬行)하기에 노력하자는 것이다.
이 실천주의는 재래 문약(文弱)을 비판하고 강장(强壯)한 기풍을 숭상하는 데까지 연장되어, 대성학교에서는 덕(德)·체(體)·지(知)의 삼육(三育)을 중히 여겼다. 덕육(德育)과 체육(體育)을 지육(知育)보다 먼저 내세운 것은 바로 이 역행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또한 힘이 없이 이름만 있는 당시 우리 나라의 실정을 안타까워하며 ‘힘이 독립의 기초요, 생명’임을 역설하였다. 그는 웅변에서 “힘이다, 힘이다.”, “외국이 마음대로 우리 강토에 들어와서 설치는 것은 우리 나라에 힘이 없는 까닭이다.”라고 외칠 때, 그 절규의 사상적 근거도 분명 역행이었다.
이 역행은 큰 목적이 눈앞에 실현되지 못한다고 낙심하지 말고, 오늘 할 수 있는 일은 오늘 하자는 것이다. 이를테면, 자기 가정을 고치는 일, 허위를 버리는 일, 민족운동의 동지를 구하는 일, 자기자신을 개조하는 일 등은 모두 오늘에 할 수 있는 일이라 하였다.
그러기에 안창호는 스스로 행함에 작은 일에나 큰 일에나 성을 다할 것을 강조하고, 표리부동(表裏不同)과 모략중상을 극도로 경계하였으며, 스스로도 지행합일(知行合一)의 모범을 보이고자 하였다. 이러한 정신은 1909년에 조직된 청년학우회의 4대 정신에서도 나타났는데, ‘무실·역행·충의·용감’의 정신이 바로 그것이다.
안창호는 이 4대 정신 이외도 ‘자강·충실·근면’의 셋을 더해서 7대 정신을 내세웠는데, <청년학우회가 靑年學友會歌>를 지은 최남선(崔南善)은 가사에서 “무실역행 등불 밝고 깃발 날리는 곳에, 우리들의 나갈 길이 숫돌 같도다.”라고 하여, 그 정신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안창호는 다시 1913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창설한 흥사단에서도 이러한 사상을 계속 전개하여, 단가에 ‘무실역행 깃발 밑에’, ‘무실역행 정신으로’ 늠름하게 모여든다고 하였다.
흥사단 입단 문답 때 위원은 단(團)의 격식에 의하여 어깨에 누른빛과 붉은빛의 두 쪽을 합하여 된 단대를 메었다. 누른빛은 무실이니 참됨을, 붉은빛은 역행이니 힘을 상징하는 색이었다.
그리고 문답내용의 한 예로 “우리 나라의 상공업을 발전시키는 길은 무엇이뇨?”라는 위원의 물음에, “무실운동이요, 2천만 민족이 참된 사람들이 되는 일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안창호는 이 무실역행의 정신으로 신문화 창조의 지도적 역군 및 민족부흥과 사회개혁의 많은 일꾼을 양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