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일제강점기 때, 하와이로 노동 이민하여 신한민보 주필, 대한인국민회 부회장, 구미위원부 화교위원 등을 역임한 언론인·독립운동가.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 기관지로 『자신보』를, 1907년 9월에는 하와이 한인협성협회(漢人協成協會)를 조직하고 『한인합성신보』 등을 발간하면서, 한인의 문맹퇴치운동·애국사상 고취를 위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1909년 2월 국민회(國民會)가 조직되어 『신한국보(新韓國報)』를 발행할 때 그 책임을 맡았고, 1911년부터는 『신한민보(新韓民報)』의 주필로 활동하였다.
1912년 11월 샌프란시스코에서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 중앙총회를 설립할 때 만주리 지방총회 대표 대리로 참석하였고, 부회장에 선출되었다. 1913년 안창호(安昌浩)와 함께 흥사단(興士團)을 창립하였고, 흥사단의 일곱 번째 단우(團友)로 경기도 대표를 맡았다.
1919년 3·1운동 발발 후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 중앙총회에서 화교위원(華僑委員)에 임명되어 미주지역의 화교들을 대상으로 자금을 모금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1년 1월에는 구미위원부(歐美委員部)의 화교위원으로 임명되었다.
미주지역 및 캐나다 지역을 순방하면서 임시정부의 공채(公債)를 판매, 독립운동자금을 수합하였다. 이후 주로 대한인국민회에서 활동하였고, 1944년 10월 미주지역 13개 단체가 모여 주미외교위원부(駐美外交委員部)를 개조하였을 때, 서기로 활동하였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 『재미한인의 독립운동』(방선주, 1989)
- 『독립운동사자료집』8(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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