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는 정치, 경제, 문화를 포함한 사회 전 영역에서 자유와 평등을 포괄한 민주주의의 원리들이 확산되고 심화되는 과정을 가리키는 사회학 용어이다. 한국사회의 민주화 과정에서 선구적 전환점을 제공한 것은 1960년 4월 혁명과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며, 결정적인 전환점을 이룬 것은 1987년 6월 항쟁이다. 민주화를 주도한 사회조직은 사회운동단체였다. 군부 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로의 전환을 이루는 중인 한국의 민주화 과정에는, 민주주의의 원리가 실질적인 제도와 정책으로 구체화되는 사회적, 경제적 민주화가 앞으로의 과제로 남아 있다.
민주화가 권위주의 체제에서 민주주의 체제로의 변동을 뜻한다면, 그것은 3단계 또는 3단계로 이루어진다. 2단계에 따르면, 민주화는 ‘권위주의 정권으로부터 민주주의 정권의 수립’(1단계), ‘민주주의의 공고화’ 또는 ‘민주적 정권의 효율적 기능’(2단계)로 나누어진다. 3단계에 따르면, 민주화는 ‘자유화(liberalization)’, ‘민주화(democratization)’, ‘사회화(socialization)’로 이루어진다.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자유화’는 권리를 재규정하고 확장하는 과정을 말하는데, 곧 국가나 정당들에 의해 범해지는 자의적이고 불법적인 행위로부터 사회집단들 및 개인들을 보호하는 효과적이고 확실한 권리를 수립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민주화’는 과거에는 다른 원리들(예컨대 강압적 통제, 사회적 전통, 전문가 견해 혹은 행정적 실행 등)에 통치되던 정치제도들에 대해 시민권의 규칙과 절차들이 적용되는 과정을 뜻하거나, 그런 규칙과 절차들이 이전에 그와 같은 권리의 의무를 누리지 못했던 사람들(예컨대 영세보호민, 문맹자, 여성, 청년, 소수민족, 이민자 등)에게로 확장되는 것을 뜻하거나, 혹은 시민권의 규칙과 절차들이 이전에는 시민의 참여가 허용되지 않았던 쟁점 및 제도들(예컨대 국가기관, 군사제도, 정당조직, 이익결사체, 생산기업, 교육제도 등)을 망라하도록 확대되는 과정을 의미한다.
‘사회화’는 시민권의 권리가 다른 사적인 사회제도들을 망라하게 되는 것뿐만 아니라, 기회 평등과 함께 실질적인 이익의 평등이 획득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사회화는 독립적이지만 상호연관 되어 있는 이중적 흐름, 곧 사회민주주의와 경제민주주의를 포함하고 있다. 민주주의를 ‘절차적 민주주의’와 ‘실질적 민주주의’로 구분할 수 있다면, 첫 번째 단계와 두 번째 단계는 전자에, 세 번째 단계는 후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역사적으로 민주화는 서유럽과 미국에서 근대사회의 시작과 함께 진행되었다고 볼 수 있다. 영국 · 프랑스 · 미국 등이 그 선두 국가라면, 일시적으로 권의주의로 후퇴했다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민주화를 다시 이룬 독일과 일본 등은 후발 국가이다.
한편 비서구 국가들은 식민지로부터의 독립과 함께 민주화가 시작되었지만, 군부권위주의로 일시적으로 후퇴했다가 1980년대 이후 다시 민주화의 길을 걷게 되었다. 세계적으로 민주화는 여전히 진행 중에 있으며, 아직 성취하지 못한 국가들 또한 적지 않게 존재한다.
민주주의를 제도화하고 내면화하는 사회과정으로서의 민주화에 대해서는 여러 이론들이 경합해 왔다. 여기에는 거시적 접근과 미시적 접근이 존재한다. 먼저 거시적 접근에는 경제가 발전하면 민주주의를 성취할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 제시되었다.
역사적으로 경제성장과 민주주의 사이에는 여러 변수들이 매개되어 있는데, 산업화는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조직화를 가능하게 하는 동시에 시민사회의 성장 또한 촉진시킨다고 볼 수 있다.
거시적 변동과 더불어 미시적 국면 또한 주목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어떤 국가에서 민주화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공고화되는 반면, 또 다른 국가에서는 권위주의로 복귀하거나 새로운 권위주의가 등장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이행이 이렇게 불확실성으로 특징지어지는 것은 그 민주화 과정이 주어진 사회 · 경제적 조건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치 및 정치 관련 세력들의 목적과 행동에 중대한 영향을 주는 전략들이 경합한 결과에 기인한다.
이러한 착상에 기반하여 한국사회의 민주화 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한국사회의 민주화 과정에서 선구적 전환점을 제공했던 것은 1960년 4월 혁명(4 · 19)과 1980년 광주 항쟁(5 · 18 광주민주화운동)이다.
4월 혁명이 부패한 이승만 정권의 권위주의에 맞서서 학생과 시민이 주축이 되어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이루고자 했다면, 광주 항쟁은 권력을 장악한 신(新)군부에 맞서서 역시 학생과 시민이 주축이 되어 민주주의와 민족주의를 성취하고자 했다.
이후 한국의 민주화 과정에서 결정적인 전환점을 이룬 것은 1987년 6월 항쟁이다. 광주 항쟁을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권력을 쟁취했지만 군부권위주의 정권은 이내 정당성의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1984년 ‘유화국면’이라 불린 자유화 시기를 거치면서 학생운동을 포함한 시민사회 내 사회운동들은 활성화되었으며, 1985년 2 · 12 총선거를 통해 제도권 내 신민당이라는 선명한 야당이 등장하면서 지배세력과 저항세력의 갈등은 직선제 개헌을 쟁점으로 전면화 되었다. 이러한 대치국면에서 1987년 4월 13일 협상 종결 선언과 박종철 고문치사 은폐기도 폭로 사건을 계기로 6월에는 시민사회로부터의 광범위한 저항이 폭발했다.
6월 항쟁은 일차적으로 군부권위주의 정권의 강압정치에 기인한 것이었지만, 거시적으로는 급속한 산업화에 대응해 진행된 시민사회의 성장에 힘입은 것이기도 했다. 그 규모가 전국적이었고 화이트칼라를 포함한 중간계급이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점에서 6월 항쟁은 ‘시민사회의 부활’이라고 부를 수 있다. 지배세력과 저항세력이 잠정적으로 타협한 ‘6 · 29 선언’ 이후 한국사회는 산업화에 이어서 본격적인 민주화의 길로 들어섰다.
이러한 한국 민주화 과정에서 주목할 특징 가운데 하나는 ‘사회운동에 의한 민주화’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 민주화 과정에서 사회운동이 담당한 역할은 매우 중요한데, 이는 한국의 국가와 시민사회 관계의 특수성에 기인한다.
산업화 과정에서 한국의 국가와 시민사회의 관계는 ‘국민투표제적 민주주의’의 성격을 갖고 있었다. 국민투표제적 민주주의란 상이한 계층적, 기능적, 직업적 이해관계를 인정하지 않고 국가와 국민을 직접 연결하려는 정치체제를 말한다. 이 국민투표제적 민주주의는 무엇보다 국가와 시민사회를 매개하는 정당정치의 빈곤으로 특징지어질 수 있는데, 정당정치가 낙후되어 있기 때문에 사회운동단체가 정당을 대신하는 역할을 담당해 왔다고 볼 수 있다.
사회운동에 의한 민주화를 주도한 사회조직은 민중단체와 시민단체였다. 거시적으로 1987년 6월 항쟁 이전의 사회운동은 군부권위주의에 대항하는 민주화운동이라는 큰 목표 아래 급진노선과 온건노선 간의 차이가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하지만 1987년 6월 항쟁 이후 민주주의 절차들이 도입되면서 사회운동 세력 사이에서 운동의 목표 · 주체 · 방식에 대한 평가의 차이가 나타났으며, 이에 따라 민중운동과 시민운동 간의 노선분화가 진행되었다.
노동조합으로 대표되는 민중단체가 경제적 불평등과 정치적 억압을 해결하기 위한 더욱 근본적인 구조개혁을 지향했다면, 비정부조직(NGOs)으로 대표되는 시민단체는 합리적 경제 및 정치개혁은 물론 환경보호, 여성해방, 인권신장 등을 추구했다.
사회운동에 의한 민주화가 한국사회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은 1990년대였다. 먼저 노동단체들은 일련의 노력 끝에 1995년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을 건설함으로써 노동자의 권리 향상을 추구했으며,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으로 대표되는 교육단체들은 ‘참교육’으로 상징되는 교육개혁에 주력했다.
한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여성단체연합(여연), 환경운동연합(환경련), 참여연대 등으로 대표되는 시민단체들은 금융실명제 실시를 요구한 것을 위시해 호주제 철폐 운동, 동강 살리기 운동, 소액주주운동 등을 펼침으로써 시민들로부터 큰 지지를 받았다. 나아가 2000년에는 정치개혁을 촉구하는 낙선운동을 벌임으로써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사회운동에 의한 민주화와 비교하여 한국 민주화 과정에서 정당정치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뒤쳐져 있었다. 2000년대에 들어와 시민사회의 성장에 대응하는 정당정치가 조금씩 성숙되기는 했지만, 행정부에 대한 입법부의 위상은 여전히 낮으며, 정당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 또한 높다.
민주화 과정에서 투표율이 점차 낮아져 온 것은 정당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라 할 수 있다. 요컨대, 제도정치에 대한 신뢰가 낮은 반면 운동정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은 한국 민주화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를 이루고 있다.
1987년 이후 두 번에 걸친 수평적 정권교체, 사회운동의 적극적 역할, 그리고 더디게 성장해 온 정당정치는 한국 민주주의를 나름대로 발전시키고 성숙시켜 왔다. 민주주의 절차의 제도화라는 측면에서 한국 민주화는 군부권위주의라는 ‘예외 국가’에서 민주주의라는 ‘정상 국가’로의 전환을 추구해 왔으며, 국제적으로도 동아시아 민주화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한국 민주화는 사회 · 경제적 민주화를 여전히 성취하지 못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먼저 민주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강화되어 온 세계화의 충격은 고용, 소득, 소비에서의 경제적 양극화는 물론 교육, 일상생활에서의 문화적 양극화 또한 강화시키고 있다. 점증하는 사회 양극화는 사회통합을 약화시킴으로써 민주주의의 사회적 기반을 침식한다는 점에서 양극화의 해소는 한국 민주화에 부여된 중대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사회갈등의 분출 또한 한국 민주화의 그늘을 이루고 있다. 민주화 과정에서 군부권위주의 아래 억압되어 온 사회갈등이 분출하면서 사회균열이 다원화되어 왔는데, 자본 대(對) 노동, 환경 대 개발, 중앙 대 지방, 남성 대 여성 간의 긴장과 갈등이 지속적으로 분출해 왔다. 사회갈등을 물론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하지만 때때로 과도하게 지불하는 갈등의 사회적 비용을 줄이고 갈등조정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은 한국 민주화의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다.
전통사회에서 현대사회로의 전환에서 가장 중요한 변동은 산업화와 민주화이다. 민주화는 인권과 민주주의 원리를 사회 전 영역에 뿌리내리게 함으로써 사회발전의 원동력을 이룬다. 그 동안 진행되어 온 한국사회의 민주화 과정에 대해서는 양면적 평가가 가능하다. 정치적 측면에서 우리 사회는 절차적 민주주의를 제도화하는 데 나름대로 성과를 이루어 왔다. 하지만 사회 · 경제적 측면에서 실질적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데는 아직 성공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바람직한 민주화는 절차적 민주화를 성취하는 것 이상을 요구한다. 사회 · 경제적 민주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민주주의 원리가 실질적인 제도와 정책으로 구체화되어야 한다. 더욱이 세계화가 강제하는 사회 양극화에 대한 적극적 대응은 한국 민주주의에 부여된 매우 중대한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이점에서 한국 민주화는 절차적 민주주의를 넘어서서 실질적 민주주의를 구현해야 하는 목표를 여전히 안고 있다.
다른 국가의 역사적 경험에서 볼 수 있듯이 민주화는 지속적으로 확산되고 심화되어야 할 장구한 사회과정이다. 바람직한 민주화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정치사회와 시민사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정부와 정당을 포함한 정치사회가 시장의 효율성과 시민사회의 역동성을 높이기 위한 감독자로서의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면, 공론장과 사회운동을 포괄한 시민사회는 국가의 합리성과 시민사회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감시자로서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