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1905년 4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안창호 등이 결성한 민족 운동 단체.
변천 및 현황
1905년 러일전쟁 이후 일제가 한국의 식민 지배를 본격화하자 1905년 4월 안창호를 비롯하여 송석준(宋錫峻), 정재관(鄭在寬), 임준기(林俊基), 이강(李剛), 임치정(林蚩正), 방화중(邦化重) 등은 샌프란시스코에서 기존의 ‘리버사이드 공립협회’와 샌프란시스코의 친목회를 통합, 발전시켜 항일운동과 동족상애(同族相愛)를 목적으로 한 공립협회를 설립하였다. 이 시기 공립협회는 연장적 성격을 지녔을 뿐 조직 체계를 갖추지는 못하였다.
미국 본토에는 공립협회 외에 대동보국회(大同保國會), 공제회(共濟會), 동맹신흥회(同盟新興會) 등 4개 단체가 존립하였으나, 당시 미주 한인 사회를 선도한 단체는 공립협회였다. 공립협회는 1905년 11월 22일 기관지 『공립신보(共立新報)』를 창간하였고, 중앙총본부인 공립관(共立館)을 설치하고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여러 지역에는 지회를 설립하였다.
공립협회는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국내외 독립 운동 단체들과 연합을 모색하였다. 그리하여 1908년 3월 경부터 하와이 한인합성협회(韓人合成協會)와의 통합을 추진, 11월에는 합동발기문을 발표하고 1909년 2월 국민회(國民會)를 창립하였다.
국민회가 설립되면서 기존의 한인합성협회는 국민회 하와이지방총회로, 공립협회는 국민회 북미지방총회로 변경되었다. 이어 1910년 2월에는 국민회가 대동보국회와 통합하여 5월 10일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가 설립됨으로써 미주 및 멕시코 단체들까지 통괄하는 단체로 발전되었다.
주요 활동
참고문헌
논문
- 이현주, 「도산과 초기 미주단체」(『한국독립운동사연구』 31,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8)
- 김도훈, 「1910년 전후 미주지역 공립협회 · 대한인국민회의 민족운동 연구」(국민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3)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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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더럼 화이트 스티븐스, 미국의 외교관(?~1908). 광무 8년(1904)에서 융희 2년(1908)까지 우리나라에 머무른 외교 고문으로, 귀국하여 일제의 침략 정책을 찬양하고 선전하다가 전명운, 장인환에게 피살되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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