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도 황주 출신. 1902년 미국으로 이민, 샌프란시스코에 거주하였다. 1907년 미국에서 『공립신보(共立新報)』의 주필 겸 공립협회 총회장에 선출되어 언론을 통한 독립운동을 개시하였다.
1908년 3월 미국인 친일 외교고문 스티븐스(Stevens, D.)의 “일본의 한국 지배는 불가피하며 많은 한국인이 일본의 지배를 환영하고 문화도 발전하고 있다.” 는 등의 일본의 한국 지배를 정당화하는 발언이 신문에 보도되었다.
이에 최유섭(崔有涉)·문양목(文讓穆)·이학현(李學鉉) 등과 같이 스티븐스를 방문하여 친일적인 발언을 꾸짖으며, 사과하고 정정하라고 요구하였다. 그러나 오히려 무례한 태도를 보이자 주먹으로 구타하여 응징하였다. 장인환(張仁煥)·전명운(田明雲)의 스티븐스 사살도 이 같은 응징 조처 이후에 일어난 일이다.
1909년 공립협회와 합성협회(合成協會)를 통합해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를 결성하고 총회장을 역임하였다. 같은 해 러시아 지역의 국민회 지회 조직을 확장할 목적으로 이상설(李相卨)과 함께 러시아로 파견되었다. 1911년 5월 소련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종호(李鐘鎬)와 러시아 관청의 허가를 얻어 권업회(勸業會)를 조직하고, 그 총본부를 신한촌(新韓村)에 두고 연추(煙秋)·쌍성(雙城)을 내왕하며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그 뒤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대한인국민회에 관계하며 항일독립운동을 계속하였다.
1963년 대통령표창, 1980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