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용 ()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3·1운동, 계몽운동과 대동청년단 · 의열단의 항일투쟁에 참여한 독립유공자.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83년 10월 7일
사망 연도
1941년 9월 22일
출생지
경상북도 상주
대표 상훈
대통령 표창(1963)|건국훈장 애국장(1991)
내용 요약

김사용은 경상북도 상주 출신으로, 휘문의숙을 졸업한 후 1919년 3·1운동에 참여하고 교남학우회를 중심으로 경상북도 일대에서 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항일 비밀결사인 대동청년단에서 활동하면서 1920년 '폭탄밀조사건', 1923년 무장투쟁 단체인 의열단의 거사 계획 사건으로 체포된 독립유공자이다.

정의
일제강점기 3·1운동, 계몽운동과 대동청년단 · 의열단의 항일투쟁에 참여한 독립유공자.
인적 사항

김사용(金思容)은 1893년 10월 7일 경상북도 상주에서 출생하여 1941년 9월 22일 사망하였다.

주요 활동

경상북도 상주 출신인 김사용은 1910년 4월 휘문의숙(徽文義塾)을 제1회로 졸업하고, 5월 경상남도 동래의 구성학교(龜明學校) 교사로 부임하였다.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1909년 10월 결성된 비밀결사인 대동청년단(大同靑年團)에도 가입하였다고 한다.

1919년 서울에서 3 · 1운동에 참여하여 독립선언서를 제작, 배포하고 불온한 연설을 하였다고 하여, 출판법과 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되었으나, 8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증거불충분으로 주1 처분을 받았다. 1920년 2월 대구에서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 출신인 문상직 및 서영균 · 송정득 등과 함께 '폭탄밀조사건(爆彈密造事件)'에 연루되어 검속되었으며, 4월 조선노동공제회(朝鮮勞動共濟會) 창립에도 관여하였다. 같은 해 6월 창립된 조선교육회(朝鮮敎育會) 평의원을 맡았으며, 진주에서 고등보통학교 설립 활동을 벌이는 한편, 노동공제회 진주지회 조직을 주도하였다.

1923년 3월 무장투쟁 단체인 의열단(義烈團)김시현 · 김지섭 · 유석현 · 황옥(黃鈺) 등이 중국에서 다량의 권총과 폭탄 등 무기를 몰래 들여와 일제의 관공서를 폭파하고 요인을 암살하려 하였으나, 사전에 발각되어 실패하였다. 이때 김사용도 서울에서 황옥에게서 소형 폭탄 5개를 받아 보관하는 등 협조하였다가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으나, 4월에 석방되었다.

1923년 5월에는 경상도 출신 서울 유학생들로 조직된 교남학우회(嶠南學友會) 회관건축기성회의 상무위원을 맡아 경비 조달을 위하여 경상북도 일대를 순회하는 한편, 일신고등보통학교 설립후원회 실행위원도 맡는 등 교육운동에 노력하였다.

상훈과 추모

1963년 대통령 표창,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단행본

김영범, 『한국근대민족운동과 의열단』(창작과비평사, 1997)
『독립유공자 공훈록』 1(국가보훈처, 1986)

논문

전성현, 「일제강점기 경남지역의 의열투쟁과 지역성-1920년대 초 의열단의 활동을 중심으로」(『한국독립운동사연구』 38,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11)
권대웅, 「대동청년단 연구」(『한민족독립운동사논총』, 수촌박영석교수화갑기념 논총간행위원회, 1992)
양형석, 「김시현(1883~1966)의 항일투쟁」(『안동사학』 3집, 안동대학교 안동사학회, 1998)

신문

「의열단사건의 예심결정서의 내용」(『조선일보』, 1923. 6. 15.)
「의열단은 예심 다섯명은 방석」(『조선일보』, 1923. 4. 18.)
「적화의 봉화 독립의 맹염 의열단사건 내용발표」(『동아일보』, 1923. 4. 12.)
「유망한 조선교육회」(『동아신보』, 1920. 6. 28.)
「대구에 폭탄 밀조 범인」(『매일신보』, 1920. 3. 3.)
「교남의 모범」(『대한매일신보』, 1910. 5. 8.)

판결문

「판결문」(경성지방법원, 1923. 6. 12.)
「판결문」(경성지방법원, 1919. 8. 30.)
주석
주1

형사 소송에서, 공소권이 없어져 기소를 면하는 일. 해당 사건에 관하여 이미 확정 판결이 났을 때, 사면이 있을 때, 법령이 바뀌어 해당 형이 폐지되었을 때, 공소 시효가 지났을 때 이루어진다.    우리말샘

집필자
한규무(광주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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