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1909년 10월 경상남도 동래에서 조직되어 만주까지 확대된 항일 비밀결사.
변천 및 현황
「단규(團規)」는 “단원은 반드시 피로 맹서할 것, 단명(團名)이나 단(團)에 관한 사항은 문자로 표시하지 말 것, 경찰 기타 기관에 체포될 경우 그 사건은 본인에게만 한하고 다른 단원에게 연루하지 말 것” 등 독립운동을 표방한 비밀결사임을 밝혔다. 명칭은 자료에 따라서 ‘대동청년당(大東靑年黨)’으로도 혼용해서 나온다.
단원은 꾸준히 확충되었다. ‘신민회 사건’에서 체포를 면했던 김삼(金三) · 김태희(金泰熙) · 김홍량(金鴻亮) · 서초(徐超) · 임현(林玄 · 차병철(車秉轍) 등이 가입하였다. 안희제와 서상일이 만주나 러시아령에서 만났던 윤세복(尹世復) · 이시열(李時悅) · 최병찬(崔炳贊) 등이 참여하였다.
활동
조선국권회복단의 단원인 박광(朴洸) · 신상태(申相泰) · 신성모(申性模) · 윤상태(尹相泰) 등이, 백산상회 직원인 윤병호(尹炳浩) · 윤현진(尹顯振) · 이호연(李浩然) · 최완(崔浣) 등이 이 비밀결사의 회원으로 함께 참여하였다. 인재 양성에도 적극적이었는데, 1919년 11월 기미육영회(己未育英會)를 조직하여 청소년들의 해외 유학을 통해 장차 국권 회복의 인재를 양성하고자 하였다.
조직은 대구 · 부산과 함께 만주 지역으로 확대되었다. 백산상회는 서울 · 원산 · 안동 · 봉천 등의 지점 및 연락 사무소를 통해 재만독립운동(在滿獨立運動) 단체를 지원하였다. 독립운동 자금 지원은 회사의 상업거래 형식으로 송달되어 일제의 감시를 피할 수 있었다. 또한, 중국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연통제(聯通制) 역할을 담당하였고, 의열단(義烈團)의 국내 연락 기관으로 활동하였다.
1945년 해방이 될 때까지 일제에게 노출되지 않고 활동하였기에, 구체적인 조직과 활동이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
참고문헌
단행본
- 권대웅, 『1910년대 국내독립운동』(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8)
논문
- 김성민, 「백산 안희제의 민족운동」(『내일을 여는 역사』 74, 재단법인 내일을여는역사재단, 2019)
- 김주용, 「동천 신팔균의 독립운동연구」(『한국민족운동사연구』 60, 한국민족운동사학회,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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