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동맹회는 일제강점기인 1922년 2월 서울에서 사회주의자들이 조직하였던 사상단체이다. ‘사회혁명당[서울파]’의 합법적 외곽 사상단체로 조직되었다. 심상완(沈相完), 신일용(辛日鎔), 이영(李英), 장병천(張炳天) 등이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이들은 ”인류 생활의 공존공영적(共存共榮的) 진리를 파악하여 민중문화의 건설을 목적으로 한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1922년 3월 31일에 무산자동지회(無産者同志會)와 함께 통합하여 무산자동맹회(無産者同盟會)로 발전적 해체를 하였다.
1919년 3 · 1운동 이후 활발하게 일어난 대중운동의 일환으로 전국 각지에서 많은 청년 · 사상 단체들이 생겨났다. 국외에서 사회주의 사상을 수용하고 국내에 조직을 결성한 상해파(上海派) 고려공산당과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에 소속되지 않은 사회주의 비밀 조직이 결성되었다.
그 가운데 하나가 1921년 10월 도쿄[東京]에서 결성되었다가 서울로 옮긴 ‘사회혁명당[서울파]’이었다. 사회주의 단체인 ‘사회혁명당[서울파]’는 김사국(金思國)의 주도로 '사람에 의한 사람의 착취를 폐지하고 사회주의의 승리를 촉진하는 것'을 조직의 과제로 삼았다.
신인동맹회는 1922년 2월에 ‘사회혁명당[서울파]’의 합법적 외곽 사상단체로 조직되었다. 심상완, 신일용, 이영, 장병천 등이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이들은 ”인류 생활의 공존 공영적 진리를 파악하여 민중문화의 건설을 목적으로 한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이 단체는 1922년 3월 31일에 무산자동지회와 함께 통합하여 무산자동맹회로 발전적 해체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