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구락부

  • 역사
  • 단체
  • 일제강점기
1924년 8월 경성에서 일본인과 조선인 유력 세력이 함께 조직한 친일 정치 단체.
단체
  • 설립 시기1924년 8월
  • 설립자오무라 햐쿠조|오오가키 다게오|이케다 쵸지로|방규환|예종석|조병상
  • 설립지경성
  • 소재지경성
  • 해체 시기1940년
집필 및 수정
  • 집필 2021년
  • 류시현 (광주교육대학교 교수)
  • 최종수정 2022년 07월 23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갑자구락부는 1924년 8월 경성에서 재조(在朝) 일본인과 조선인 유력 세력이 함께 조직한 친일 정치 단체이다. 이 단체는 각종 정치 현안에 관해 조사하고 이를 청원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자치론’에 관해서는 독립의 전제가 된다는 이유로 강력하게 반대하였다. 중점을 둔 참정권 청원 운동은 조선에 거주하는 일본인의 정치적 위상을 강화하는 데 있었다. 만주사변과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일제의 침략 전쟁을 지지하는 시국 대회와 시국 간담회 등을 개최하였다.

정의

1924년 8월 경성에서 일본인과 조선인 유력 세력이 함께 조직한 친일 정치 단체.

#설립 목적 1924년 8월 정치 현안에 관해 연구하고 건의할 정치 단체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경성에서 오무라 햐쿠조[大村百藏]‧오오가키 다게오[大垣丈夫] · 이케다 쵸지로(池田長次卽) 등의 일본인과 방규환(方奎煥)‧예종석(芮宗錫) · 조병상(曺秉相) 등 40명이 모여 결성하였다.

설립의 목적은 조선 통치와 관련해서 관민(官民) 공동의 책임 의식 아래 조선에서의 시무(時務)를 조사‧연구하고 관련 사항을 조선총독부에 건의한다는 것이었다.

변천 및 현황

1931년 만주사변 이후 중국을 비난하고, 국제연맹 탈퇴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시국 대회와 결의 대회 등을 개최하였다. 또한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시국 간담회를 개최하여 중국을 지원하는 영국을 비판하였다. 그러다가 1940년 국민총력조선연맹(國民總力朝鮮聯盟)에, 1941년 흥아보국단(興亞報國團)에 편입됨으로써 관변 선전 단체가 되었다.

주요 활동

갑자구락부는 각종 정치 현안에 관해 조사하고 이를 청원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설립과 동시에 자신들의 의견을 압축한 「전언서」를 조선총독부에 제출하였다. 그 내용은 조선총독부의 세출 총경비를 1,500만 원 내지 2,000만 원을 절약하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치론’에 관해서는 독립의 전제가 된다는 이유로 강력하게 반대하였다.

중점을 둔 참정권 청원 운동은 조선에 거주하는 일본인의 정치적 위상을 강화하는 데 있었다. 이들이 주장한 참정권은 유권자의 범위를 극히 제한한 것인데, 일본인이 많이 거주하는 경성, 부산, 대구, 평양에서만 선거를 실시하자는 내용이었다. 일본과 동일한 정치적 상황을 조성하자는 ‘내지연장주의(內地延長主義)’에 입각해서 조선 내 일본인과 극소수의 조선인을 일본 국회에 참여하게 하자는 정치적 입장을 표방한 것이다.

의의 및 평가

1930년대 중반 이후 조선총독부의 정책 변화와 조선인들의 외면으로 회원 수가 급격히 감소하는 등 쇠퇴하여 유명무실한 존재로 되고 말았다.

참고문헌

  • 단행본

  • - 박수현‧이용창‧허종, 『일제의 친일파 육성과 반민족 세력』(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9)

  • 논문

  • - 지승준, 「동민회(同民會)의 정치적 성격과 4파 연합운동」(『역사와 현실』 82, 한국역사연구회, 2011)

  • - 이태훈, 「일제하 친일정치운동연구: 자치·참정권 청원운동을 중심으로」(연세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0)

주석

  • 주1

    : 1941년에 윤치호를 중심으로 일제의 태평양 전쟁에 협력하기 위하여 세운 단체. 준비위원회 단계에서 해체된 후 임전대책협의회와 통합하여 조선임전보국단을 결성하였다. 우리말샘

  • 주2

    : 식민지를 본국(本國)의 연장으로 보아 같은 법령과 정책을 시행하는 정책. 또는 그 이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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