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구락부 ()

근대사
단체
1924년 8월 경성에서 일본인과 조선인 유력 세력이 함께 조직한 친일 정치 단체.
단체
설립 시기
1924년 8월
해체 시기
1940년
설립자
오무라 햐쿠조|오오가키 다게오|이케다 쵸지로|방규환|예종석|조병상
설립지
경성
소재지
경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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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갑자구락부는 1924년 8월 경성에서 재조(在朝) 일본인과 조선인 유력 세력이 함께 조직한 친일 정치 단체이다. 이 단체는 각종 정치 현안에 관해 조사하고 이를 청원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자치론’에 관해서는 독립의 전제가 된다는 이유로 강력하게 반대하였다. 중점을 둔 참정권 청원 운동은 조선에 거주하는 일본인의 정치적 위상을 강화하는 데 있었다. 만주사변과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일제의 침략 전쟁을 지지하는 시국 대회와 시국 간담회 등을 개최하였다.

정의
1924년 8월 경성에서 일본인과 조선인 유력 세력이 함께 조직한 친일 정치 단체.
변천 및 현황

1931년 만주사변 이후 중국을 비난하고, 국제연맹 탈퇴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시국 대회와 결의 대회 등을 개최하였다. 또한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시국 간담회를 개최하여 중국을 지원하는 영국을 비판하였다. 그러다가 1940년 국민총력조선연맹(國民總力朝鮮聯盟)에, 1941년 흥아보국단(興亞報國團)에 편입됨으로써 관변 선전 단체가 되었다.

주요 활동

갑자구락부는 각종 정치 현안에 관해 조사하고 이를 청원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설립과 동시에 자신들의 의견을 압축한 「전언서」를 조선총독부에 제출하였다. 그 내용은 조선총독부의 세출 총경비를 1,500만 원 내지 2,000만 원을 절약하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치론’에 관해서는 독립의 전제가 된다는 이유로 강력하게 반대하였다.

중점을 둔 참정권 청원 운동은 조선에 거주하는 일본인의 정치적 위상을 강화하는 데 있었다. 이들이 주장한 참정권은 유권자의 범위를 극히 제한한 것인데, 일본인이 많이 거주하는 경성, 부산, 대구, 평양에서만 선거를 실시하자는 내용이었다. 일본과 동일한 정치적 상황을 조성하자는 ‘내지연장주의(內地延長主義)’에 입각해서 조선 내 일본인과 극소수의 조선인을 일본 국회에 참여하게 하자는 정치적 입장을 표방한 것이다.

의의 및 평가

1930년대 중반 이후 조선총독부의 정책 변화와 조선인들의 외면으로 회원 수가 급격히 감소하는 등 쇠퇴하여 유명무실한 존재로 되고 말았다.

참고문헌

단행본

박수현‧이용창‧허종, 『일제의 친일파 육성과 반민족 세력』(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9)

논문

지승준, 「동민회(同民會)의 정치적 성격과 4파 연합운동」(『역사와 현실』 82, 한국역사연구회, 2011)
이태훈, 「일제하 친일정치운동연구: 자치·참정권 청원운동을 중심으로」(연세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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