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중학교(普成中學校) 교장을 역임하였다. 1907년 4월 양기탁(梁起鐸)·안창호(安昌浩)·전덕기(全德基)·이동휘(李東輝) 등을 중심으로 국권회복을 위한 비밀결사 신민회(新民會)가 창립되자 이에 가입하여 서울에서 활동하였다.
1909년 신민회의 합법적 청년단체로서 청년학우회(靑年學友會)의 발기인이 되고, 청년학우회 한성연회(漢城聯會)의 회장을 거쳐 청년학우회 제2대회장이 되어 애국계몽운동에 헌신하였다. 1909년 신민회의 비밀 청년단체로 80여 명의 동지들과 함께 대동청년당(大東靑年黨)을 조직하여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하였다.
1920년에 김명식(金明植)·박이규(朴珥圭) 등과 함께 조선노동공제회(朝鮮勞動共濟會)를 조직하여 중앙집행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1963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