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배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 일제강점기
조선 후기에, 성균관박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광원(光元)
  • 매하(梅下)
인물/근현대 인물
  • 본관김해(金海)
  • 사망 연도1910년(순종 3)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47년(헌종 13)
  • 출생지전라북도 익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신용하 (서울대학교, 사회학)
  • 최종수정 2025년 12월 08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성균관박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광원(光元), 호는 매하(梅下).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익산 출신. 김현교(金顯敎)의 아들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66년 병인양요를 당하여 아직 약관의 나이로 토적의거격문(討賊義擧檄文)을 지어 상소하였다.

성균관박사(成均館博士)가 되어 문명을 떨치다가, 1905년 11월 일제가 무력으로 위협하여 을사조약을 강제 체결하고 국권을 박탈하자 사임하고 낙향하여 청장년들에게 훈육을 통하여 항일독립정신을 고취하였다.

1910년 8월 일제가 한국을 병탄한 뒤 헌병주재소장을 통하여 김근배를 회유하기 위한 은사금(恩賜金)을 보내자 온갖 위협에도 불구하고 이를 거절하였으며, 앞으로 수없는 곤욕이 있을 것을 예견하여 죽음으로써 충절을 지키겠다는 유서를 남기고 우물에 투신, 순절하였다.

상훈과 추모

사당으로는 아들 김종호(金種昊)가 1931년 건립한 매곡사(梅谷祠)가 있다. 1963년 대통령표창, 1980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 - 『기려수필(騎驢隨筆)』

  •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 『독립운동사』7(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

주석

  • 주1

    : 순절 : 『기려수필(騎驢隨筆)』, 1910년 金根培(二) 庚戌合邦殉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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