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상익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 때, 파리강화회의에 전달할 독립청원서의 서명 운동과 발송에 가담하였으며, 군자금을 제공하여 독립군기지 건설을 지원하다가 체포된 독립운동가.
이칭
  • 성재(省齋)
  • 찬수(贊粹)
인물/근현대 인물
  • 본관안동(安東)
  • 사망 연도1935년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63년(철종 14)
  • 출생지경상북도 봉화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신용하 (서울대학교, 사회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성재문집 미디어 정보

성재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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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강점기 때, 파리강화회의에 전달할 독립청원서의 서명 운동과 발송에 가담하였으며, 군자금을 제공하여 독립군기지 건설을 지원하다가 체포된 독립운동가.

개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찬수(贊粹), 호는 성재(省齋). 경상북도 봉화 출신. 김흥락(金興洛)의 문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각국 공사관에 보낼 호소문을 작성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1910년 국권이 상실되자 후학의 지도에 전념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김창숙(金昌淑)·곽종석(郭鍾錫) 등 유림 137명과 파리강화회의에 독립을 청원하는 장서(長書)에 서명학고 발송에 가담하였다가 일본경찰에 붙잡혔다. 1919년 7월 29일 대구지방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석방되었다

1925년 김창숙이 중국으로부터 비밀리에 입국하여 내몽고(內蒙古)지방에 독립군기지를 건설할 자금으로 20만원의 군자금을 모금할 때 이에 찬동하여 자진해서 군자금을 제공하였으며, 이를 적극 지원하다가 일본경찰에 붙잡혔다.

1929년 3월에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언도받았다.

상훈과 추모

1968년 대통령표창, 1990년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문집으로 『성재집(省齋集)』 28권이 있다.

참고문헌

  • - 『성재집(省齋集)』

  • - 『기려수필(騎驢隨筆)』

  •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 『고등경찰요사(高等警察要史)』(경상북도경찰부,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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