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찬수(贊粹), 호는 성재(省齋). 경상북도 봉화 출신. 김흥락(金興洛)의 문인이다.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각국 공사관에 보낼 호소문을 작성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1910년 국권이 상실되자 후학의 지도에 전념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김창숙(金昌淑)·곽종석(郭鍾錫) 등 유림 137명과 파리강화회의에 독립을 청원하는 장서(長書)에 서명학고 발송에 가담하였다가 일본경찰에 붙잡혔다. 1919년 7월 29일 대구지방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석방되었다
1925년 김창숙이 중국으로부터 비밀리에 입국하여 내몽고(內蒙古)지방에 독립군기지를 건설할 자금으로 20만원의 군자금을 모금할 때 이에 찬동하여 자진해서 군자금을 제공하였으며, 이를 적극 지원하다가 일본경찰에 붙잡혔다.
1929년 3월에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언도받았다.
1968년 대통령표창, 1990년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문집으로 『성재집(省齋集)』 28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