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문도(文道), 호는 소당(素堂). 충청북도 청원 출신.
1910년 8월 일제가 한국을 병탄하자, 국권회복을 목적으로 제자들을 모아 배일사상을 고취하고, 호적의 등록과 납세·부역 등을 모두 불응하며 항거하다가 6개월간 투옥되었다.
1913년 2월 신영태(申榮泰)·이종만(李鍾萬)·신학석(申學錫)·변영인(卞榮仁) 등과 배일항거운동을 하던 중 일제 헌병대에 다시 구금되었으나, 완강한 단식투쟁을 결행하여 그 다음 달에 석방되었다. 1913년 5월 청원군 오창면 이산리에서 성산대강회(星山大講會)를 개최하고, 국권회복을 위하여 봉기할 것을 주창하다가 다시 붙잡혀 3년간의 옥고를 치렀다.
출옥한 뒤에 일제 총독에게 일본의 불의를 힐책하는 항일유서를 송부하고 나서, 단식을 결행하여 자결하였다.
1968년 대통령표창, 1977년에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