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도 황주 출신. 1895년 10월 일제의 명성황후 시해 만행이 일어나자 김하락(金河洛)의 휘하로 경기도에서 의병을 일으켜 제2대십장으로 활약하였다.
그 뒤 군대에 입대하여 평양진위대(平壤鎭衛隊)에서 상등병(上等兵)으로 근무하다가 부대가 서울로 소환되어 시위대 제3대대 제2중대에 배속되었다.
1905년 11월 일제가 무력으로 위협하여 을사조약을 강제로 체결하여 국권을 박탈하고 민영환(閔泳煥)·조병세(趙秉世) 등이 자결로써 항거하니 김봉학은 흐느껴 울면서, “대대로 녹을 먹던 신하로서 순국함은 당연하며, 나 또한 군인으로서 6년이나 지내면서 나라를 지키지 못했으니 원수인 왜놈을 죽이고 나도 죽겠다.”고 하였다.
동지들과 모의하여 일제의 한국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처단할 계책을 짜고 있다가 일이 누설되어 실패하게 되자, 독약을 마시고 자결하였다. 비서원승(秘書院丞)에 추증되었으며, 고향에 정문이 세워졌다.
196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