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도 안악 출신. 1919년 3·1운동 때 선천의 신성학교(信聖學校) 학생으로 이승훈(李昇薰)의 지시를 받은 교사 홍성익(洪盛益)·김지웅(金志雄)·양준명(梁濬明) 등의 지도 아래 기숙사에서 독립선언서를 등사하고 격문과 태극기를 제작하여 3월 1일 선천면의 독립만세운동에 앞장섰다.
1932년 3월 장이욱(張利郁)·정인종(鄭仁宗)·김동원(金東元) 등과 함께 수양동우회(修養同友會)의 후신인 동우회에 가입하여 그 기관지 『동광(東光)』을 발간하고 민족운동을 하다가 1937년 6월 일본경찰에 잡혔다.
1939년 12월 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형을 언도받고 항소했으나, 1940년 8월 경성복심법원에서 원심대로 형이 확정되었다.
1982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