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현(林玄)은 1887년 8월 5일 평안남도 안주에서 출생하여 1937년 6월 24일 사망하였다.
1907년 4월경 안창호 · 양기탁 등을 중심으로 서울에서 결성된 항일 비밀결사인 신민회(新民會)의 평남지회에 참여하였다고 한다. 평양을 중심으로 활동한 신민회 평남지회는 장응진이 주도하였으며, 대성학교 · 오산학교 · 태극서관 및 평양도자기회사 운영 등도 활동의 일환이었다.
1911년 일제가 조작한 이른바 ' 105인사건'으로 그 조직이 와해되는데, 임현이 언제 평남지회에 입회하여 어떤 역할을 담당하였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이어 1909년 10월경 안희제와 김동삼 · 남형우 · 서상일 등이 경상남도 동래에서 조직한 항일 비밀결사인 대동청년단(大同靑年團)에서도 활동하였다고 한다.
대동청년단의 단규는, 1. 단원은 반드시 피로 맹서할 것, 2. 새 단원의 가입은 단원 2명 이상의 추천을 받을 것, 3. 단에 관한 사항은 문자로 표시하지 말 것, 4. 경찰 기타 기관에 체포될 경우 그 사건은 본인에게만 해당하고 다른 단원에게 연루시키지 말 것 등이라 알려져 있다. 대동청년단은 상하이 임시정부와 국내를 연결하는 연통제 업무를 수행하였다고 하며, 의열단의 국내 연락 기관이라고도 한다.
대동청년단은 신민회 계열의 영남 지역 인사들이 결성하였으며, 임현 및 김동삼 · 김홍량 · 남형우 · 박중화 · 신백우 · 신채호 등은 대동청년단 단원이자 신민회 회원이었다고 한다. 대동청년단은 1914년부터 백산상회(白山商會)를 거점으로 국내외 독립운동가들을 연결하고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임현이 상하이로 건너간 시기와 1919년 3 · 1운동 당시의 활동 등은 확실하지 않으나, 1919년 4월 상하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선임되었으며, 교통국 위원으로도 활동하였다. 당시 교통국 위원은 임현과 선우혁 · 양준명 · 이범교 · 고한 · 윤원삼 · 이규정 · 손진형 · 김진원 · 이영찬 · 임봉수 등 11인이었다.
교통국의 주요 업무는 국내와의 통신 · 연락이었으며, 각종 정보를 수집 · 검토 · 교환하여 임시정부에 보고하고, 정부의 각종 기밀문서 등을 국내에 전달하였다. 또한, 교통국의 조직 및 독립운동을 위한 인물의 소개와 무기의 수송 · 전달, 군자금의 모집 등도 담당하였다. 임현 외에 대동청년단 출신으로 임시정부에서 활동한 인물은 김갑 · 김홍권 · 남형우 · 민강 · 윤현진 · 최인환 등이었다.
1980년 건국포장,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 등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