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일제강점기 때, 대한민국임시정부 평정관, 교통위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 뒤 1914년에 만주로 망명하여 항일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국내 동지들의 귀국 요청에 따라 1915년에 은밀히 잠입하여 국내정세의 탐지 및 군자금 모금활동을 폈다. 민충식(閔忠植)과 동지 규합에 힘쓰는 한편 교남교육회(嶠南敎育會)를 지도하면서 청년층을 포섭하였다.
1917년에 일본경찰에 잡혀 1년간 유배형을 받았다. 출옥 뒤 다시 중국으로 망명하여 1919년 4월 10일 상해(上海) 프랑스 조계에서 임시의정원의 조직에 참여하였고, 파리국제회의에 파견할 민족대표 선출에도 참가하였다.
그 해 4월 21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평정관(評定官)과 교통위원으로 선출되어 독립운동의 기본방략을 세우기도 하였다.
이 무렵에는 국내외에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를 비롯하여 8개의 임시정부가 난립하자, 각처의 책임자들과 실무적으로 접촉하면서 단일정부 수립을 위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한민족광복투쟁사』(이현희, 정음문화사, 1989)
- 『대한민국임시정부사』(이현희, 집문당, 1982)
- 『독립운동사자료집』 9(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5)
- 『독립운동사』 1·2·4·8·9(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2·1976·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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