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갑 ()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때, 임시정부에서 법무총장 대리, 노동총판, 국무위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이칭
이칭
김진원(金晉源)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88년(고종 25)
사망 연도
미상
출생지
부산광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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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강점기 때, 임시정부에서 법무총장 대리, 노동총판, 국무위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개설

국내에서는 김진원(金晉源)이라고 불렀고, 중국망명 후 김갑(金甲)이라 하였다. 부산 출신.

생애 및 활동사항

부산 동명학교(東明學校: 동래고등학교의 전신)를 졸업하였다.

서울에서 부기학교를 다니다가 1919년 3·1운동을 맞아 함양·산청 등지의 항일투쟁 연락책임을 띠고 활동하였다. 그러던 중 헌병보 김영호·장두철이 이를 감지하고 체포하려 하자 북경으로 망명하였다.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 교통위원, 의정원의원을 지냈으며, 1923년에는 국민대표회의에 참여하여 정신(鄭信) 등과 함께 대표자격심사위원에 당선되기도 하였다.

1924년 법무차관, 곧 이어 법무총장 대리, 노동총판(勞動總辦)을 역임하였다. 1926년 국무령 김구(金九)를 중심으로 한 지도체제의 내각에 참여하였다.

1927년 임시정부가 국무령지도체제를 국무위원 중심의 집단지도체제로 개헌하는 약헌기초위원회(約憲起草委員會) 위원이 되어 개헌작업을 하였다.

같은 해 8월 이동녕(李東寧)·김구·오영선(吳永善)·김철(金澈) 등과 함께 국무위원으로 선출되어 재무장으로서 활동하였다. 또, 1929년 이동녕·조소앙(趙素昻)·조완구(趙琬九)·옥성빈(玉成彬)·김구·김철 등과 한국독립당을 조직하였다.

상훈과 추모

1986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대한민국임시정부사』(이현희, 집문당, 1982)
『부산출신독립투사집』(김삼근, 박재혁의사비건립동지회, 1982)
『중국 안의 한국독립운동』(胡春惠 저, 신승하 역, 단국대학교출판부, 1978)
『무장독립운동비사』(채근식, 대한민국공보처,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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