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1922년 5월에 결성되었던 국민대표대회 소집 추진단체.
설립 목적
그러므로 상해와 북경의 대표자들이 서로 왕래해 조정·타협하여, 1922년 5월 10일 국민대표대회를 추진할 단체로서 이 위원회가 결성되었다. 주비위원으로 여운형(呂運亨)·이탁(李鐸)·안창호·서병호(徐丙浩)·김병조(金秉祚)·김규식(金奎植)·남형우(南亨祐)·안병조(安秉祚)·최동오(崔東旿)·남공선(南公善)·윤현진(尹顯振)·도인권(都寅權)·김만겸(金萬謙)·신숙(申肅)·김철(金澈)·원세훈(元世勳)·나용균(羅容均)·한진교(韓鎭敎)·이규홍(李圭洪)·이원익(李元益)·강구만(姜九萬) 등을 선임하고, 위원장에 남형우, 회계에 김철·원세훈, 서기에 나용균·서병호를 선출하였다.
기능과 역할
그리고 주비위원회 공장정(公章程)을 발표해 적극적인 태도로 국민대표대회 소집을 구체화하였다. 동시에 매주 1회의 정기총회와 필요에 따른 임시총회도 소집하기로 하는 등 박차를 가하였다.
또, 『독립신문』 6월 2일자에 대표선출구역 및 단체대표원수를 규정, 발표하고 초청장을 발송하였다. 경비문제로 국민대표대회의 실현이 부진하다가 1923년 1월 3일 국민대표대회가 개최되자 주비위원회는 해산하였다.
참고문헌
- 『한민족독립운동사연구(韓民族獨立運動史硏究)』(박영석, 일조각, 1982)
- 「국민대표회의소집문제(國民代表會議召集問題)」(이현희, 『백산학보(白山學報)』 17,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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