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숙 ()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때, 대종교 총본사 서무부장, 대형 등을 역임하며 대종교를 통한 항일투쟁을 전개한 대종교인 · 독립운동가.
이칭
백주(白舟)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86년(고종 23)
사망 연도
1952년
본관
광산(光山)
출생지
충청남도 결성군(지금의 홍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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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강점기 때, 대종교 총본사 서무부장, 대형 등을 역임하며 대종교를 통한 항일투쟁을 전개한 대종교인 · 독립운동가.
개설

본관은 광산(光山). 호는 백주(白舟). 충청남도 결성군(지금의 홍성군) 출신.

생애 및 활동사항

1911년 중앙고등보통학교 사범과를 졸업한 뒤, 잠시 서울 승동소학교(勝洞小學校)에서 교편을 잡다 같은 해 8월 만주로 망명하였다.

그 곳에서 대종교의 윤세복(尹世復)이 경영하는 동창학교(東昌學校), 화룡현 삼도구(和龍縣三道溝)의 청일학교(靑一學校), 동녕현(東寧縣)의 송화학교(松花學校), 영안현(寧安縣)의 여명학교(黎明學校) 등에서 10여 년 동안 교편을 잡았다. 한편, 1914년 10월 윤세복의 권유로 대종교에 입교하였다.

다음 해 2월 대종교 총본사(總本司)의 학리부장(學理部長) 및 서무부장에 취임하면서 시교사(施敎師)가 되고, 이어 지교(知敎)·상교(尙敎)·정교(正敎)를 거쳐 대형(大兄)이 되었다. 계속하여 대종교를 통한 독립운동을 전개하며, 1934년에 김서종(金書鍾) 등과 하얼빈에 포교기관인 선도회(宣道會)를 조직하여 대종교 포교에 앞장섰다.

1939년에는 안희제(安熙濟)·강철구(姜銕求) 등과 협조하여 대종교서적간행회를 조직, 다음 해 『종문지남(倧門指南)』 등을 번역, 발행하였다. 1942년 발해의 고도(古都)인 목단강성(牧丹江省)의 동경성(東京城)에 천전(天殿)을 건축하기로 결정하고 이를 준비하던 중 11월 교주 윤세복 등 15명과 같이 만주 경찰에 잡혔다.

목단강고등검찰청에서 19개월의 예심 끝에 1944년 2월 구속기소되어 목단강고등법원에서 15년형을 언도받고 복역하였다. 광복 뒤 석방되어 윤세복과 함께 영안현에 대종교 총본사를 재건하였다. 귀국 후에는 단군전봉건회(檀君殿奉建會)를 조직, 활약하다 6·25전쟁 때 남하, 대구에서 죽었다.

상훈과 추모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독립운동사』 8(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
『한국독립운동사』(애국동지원호회,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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