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북도 선천 출생. 1912년 데라우치[寺內正毅]조선총독사살사건 연루 혐의로 일본경찰에 잡혀 1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가 2심에서 무죄로 풀려났다.
1919년 2월 신성중학교(新星中學校) 교사 때 이승훈(李昇薰)의 지시로 교회목사 및 교사 김지웅(金志雄) 등과 모의하여 학생들을 설득, 3·1운동에 참여하게 하였다.
1919년 4월 상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하여 임시의정원의원이 되었다가 이듬해 안동교통국 사무국장으로 국내외를 연결하면서 정보의 수집·검토·분석과 군자금의 임시정부 조달 등의 활동을 하였으며, 수양동우회에서도 활약하였다.
1980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