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일대에서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하다가 옥중 순국한 독립유공자.
가계 및 인적 사항
주요 활동
1926년 출옥 후 5월 다시 손양윤을 만나 1925년 3월 북만주에서 조직된 무장투쟁 단체인 신민부(新民府)에 가입하였다. 손양윤은 1924년 만주로 건너가 신민부에 가입하고 다시 국내에 들어와 독립운동 자금 모금을 계획하고 있었다. 1927년 4월 신민부의 지시를 받은 이병묵이 국내에 들어오자 신현규는 이병묵 및 손양윤 · 손허 · 손봉현 · 윤창선 등과 함께 경상북도 일대에서 유지들을 대상으로 신민부에 전달할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하였다.
손양윤과 함께 1927년 6월 경상북도 칠곡의 일본인 집에서 현금과 엽총을 탈취하였고, 동료들과 함께 1928년 1~2월 왜관면, 3월 약수면, 4월에는 경산군 남산면의 한국인 부호들을 찾아가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하다가 밀정에게 발각되어 1928년 7월 서울의 여관에서 동지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1928년 8월 12일 서울 종로경찰서 유치장에 수감 중 사망하였는데, 일제 경찰은 다른 수감자가 갖고 있던 아편을 몰래 먹고 사망하였다고 발표하였다. 그의 사후 이 사건은 '신현규사건'으로 언론에 보도되었으며, 1929년 12월 손양윤이 징역 20년을 선고받는 등 동료들도 모두 실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단행본
- 『괴산의 항일운동과 국가수호』(괴산문화원, 2019)
- 『독립유공자 공훈록』 15(국가보훈처, 2003)
논문
- 박환, 「북만주 신민부의 국내 군자금 모금활동」(『한국민족운동사연구』 77, 한국민족운동사학회, 2013)
- 박영석, 「대한광복회 연구」(『한국민족운동사연구』 15, 한국민족운동사학회, 1997)
신문
- 「재만신민부와 연락 10수처에서 군자모집」(『동아일보』, 1929. 6. 26.)
- 「3대독자로 전 의병 출신」(『동아일보』, 1928. 8. 16.)
- 「권총 들고 활동 3년」(『동아일보』, 1928. 8. 15.)
- 「종로서 피의자 변사사건」(『중외일보』, 1928. 8. 14.)
판결문
- 「손양윤 판결문」(경성복심법원, 1929. 12. 2.)
- 「신양춘 형사사건부」(대구지방법원. 1920. 5. 10.)
주석
-
주1
: 남몰래 사정을 살핌. 또는 그런 사람.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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