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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때, 대한광복회를 조직하여 친일파를 처단하는 등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이칭
  • 극오(極五)
  • 이칭기중(基仲)
  • 소몽(素夢)
인물/근현대 인물
  • 본관인천(仁川)
  • 사망 연도1921년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73년(고종 10)
  • 출생지경상북도 상주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조동걸 (국민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일제강점기 때, 대한광복회를 조직하여 친일파를 처단하는 등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생애 및 활동사항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극오(極五). 호는 소몽(素夢). 일명 기중(基仲). 경상북도 상주 출신. 1910년대 국내에서 대표적인 독립운동단체인 풍기광복단(豊基光復團)과 대한광복회를 결성하여 활약하였다.

1913년에 유창순(庾昌淳)·유장렬(柳璋烈)·한훈(韓焄) 등과 함께 독립군단체로서 의병출신자의 집합체인 광복단을 결성하고, 군자금을 수합하기 위하여 강순필(姜順弼)과 함께 일본인이 경영하는 영월의 중석광산에 잠입, 활동하였다.

재만(在滿) 독립군과도 연락을 취하는 한편 대구에서 상덕태상회(尙德泰商會)를 경영하던 애국지사 박상진(朴尙鎭)과도 연락하면서 1915년 초 대구에서 결성된 조선국권회복단을 협의하고 1915년 7월에 대한광복회를 조직하였다.

대한광복회는 박상진을 총사령으로 경상도·전라도·충청도·경기도·황해도 각지에 회원들이 결성되어 있었는데, 채기중은 경상도의 책임자였으며 전라도 조직에도 크게 공헌하였다.

1917년 11월 광복회가 친일 부호 장승원(張承遠)을 처단할 때 이 공작을 직접 지휘하여 결행하였다. 1918년 광복회가 일본경찰에게 발각되자 상해로 망명하기 위하여 전라남도 목포에 잠적하였다가 붙잡혀 사형되었다.

상훈과 추모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 - 『소몽의사유고(素夢義士遺稿)』

  •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 『대한민국독립운동공훈사』(김후경, 광복출판사, 1983)

  • - 「대한광복회의 결성과 선행조직」(조동걸, 『한국학논총』4, 국민대학교, 1984)

  • - 「대한광복회연구」(조동걸, 『한국사연구』42,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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