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 170㎝, 너비 76㎝. 1971년 강원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조선 후기에 세운 것으로 비석의 크기와 모양이 같은 2기의 비석이며 각각 비각을 갖추고 있다.
척주동해비는 장방형의 화강석 기단 위에 오석(烏石 : 빛깔이 검은 돌)으로 된 비신을 세우고 개석(蓋石)은 생략하였다.
1661년(현종 2) 삼척부사 허목(許穆)이 동해의 풍랑으로 바닷가에 사는 백성들이 피해를 입는 일이 많아 이를 막고자 동해를 칭송하는 글인 「동해송(東海頌)」을 짓고, 그의 독특한 전서체(篆書體)로 비문을 새겨 바닷가에 세워서 풍랑을 진정시킨 비석이라 한다.
그 뒤 비석이 유실된 것을 1710년(숙종 36)에 삼척부사 박내정(朴來貞)이 유실한 비석의 탁본으로 옛 비석과 같은 비석을 다시 만들어 지금의 자리에 세웠다.
조선 영조 때 학자인 홍양호(洪良浩)는 “지금 동해비를 보니 그 문사(文辭)의 크기가 큰 바다와 같고, 그 소리가 노도와 같아 만약 바다에 신령이 있다면 그 글씨에 황홀해질 것이니, 허목이 아니면 누가 다시 이 글과 글씨를 썼겠는가.” 하고 감탄하였다 한다.
평수토찬비는 척주동해비와 같은 내력을 지닌 비석으로 규모 · 양식은 같다. 동해의 거친 파도가 삼척부내에까지 밀려드는 경우가 있어, 허목이 중국 우제(禹帝)의 전자비(篆字碑)에서 48자의 글씨를 모아 새긴 비석이다.
당초 세운 비석은 유실되고 다시 세운 비석으로, 전면에는 해서(楷書)로 ‘大韓平水土贊碑(대한평수토찬비)’라 새기고 측면에는 고종 41년(1904) 비석을 옮겨 세운다는 기록이 있으며 뒤에는 전서로 된 48자의 비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