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조선 후기 일본 왕의 노인 은사금을 거절하여 수감 중 단식하여 순국한 유학자이자 독립운동가.
인적 사항
주요 활동
최익현이 대마도에서 순국하자 1907년 태산사(台山祠)를 건립하고 그의 영정을 봉안하였다. 이때 김영상은 유림들의 요청으로 태산사 상량문을 지었고 한동안 태산사에 머물렀다.
1910년 8월 한국을 강제 병합한 일제가 10월 노인들에게 은사금(恩賜金)을 주려 하자 “대한신민(大韓臣民)이 어찌 원수의 돈을 받겠는가.”라며 이를 수차례 거절하면서 사령장에 적힌 자신의 성명을 찢어버렸다고 한다. 이에 1911년 5월 일제가 일왕을 모독한 불경죄로 그를 체포하여 동곡헌병대에 구금하였다가 군산으로 압송할 때 만경강 사창진(沙瘡津)에서 투신하여 자결하려 하였으나, 헌병이 그를 구출하여 실패하였다. 군산 감옥에 투옥된 그는 단식 끝에 76세를 일기로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학문과 저술
상훈과 추모
2011년에는 순국 100주기를 맞아 필양사에 「우국지사춘우정김영상선생순국추모비(憂國之士春雨亭金永相先生殉國追慕碑)」를 건립하였다. 2012년 정읍문화원에서 『춘우정 김영상선생 순국100주년 기념집』을 발간하였다. 2021년 11월에는 ‘정읍의 역사인물’로 선정되었으며, 어진화가(御眞畫家) 채용신(蔡龍臣)이 1922년에 그린 「투수도(投水圖)」와 후손인 이호백이 그린 「춘우정투강순절도(春雨亭投江殉節圖)」 등이 있다.
참고문헌
단행본
- 홍영기, 『대한제국기 호남의병 연구』(일조각, 2004)
- 전북향토문화연구회, 『전북의병사』 하(전북향토문화연구회, 1992)
- 『독립유공자 공훈록』 1(국가보훈처, 1986)
논문
- 홍영기, 「한말 태인의병의 활동과 영향」(『전남사학』 11, 전남사학회, 1997)
신문
- 「‘원수랑 함께 할 수 없다’ 순절한 춘우정 김영상」(『전북도민일보』, 2017. 7. 19.)
- 「춘우정 김영상 선생, 순국 100주년 기념비 제막식」(『전북도민일보』, 2011. 11. 16.)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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