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황만동(黃晩東). 서울 출신.
1920년 일제의 경기도경찰부 경부로 근무할 때 의열단(義烈團) 단원인 김시현(金始顯)과 접선한 뒤 항일독립운동에 헌신할 것을 결심하였다.
1923년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진 범인을 수색하기 위하여 중국으로 출장을 떠나게 되자 안동(安東)을 경유하여 톈진[天津]에 도착하였다. 그곳에서 의열단 단장 김원봉(金元鳳)을 만나 독립운동에 헌신할 것을 서약하였다.
김원봉으로부터 조선총독부를 비롯한 일제 통치기관의 파괴, 일제요인과 친일파 암살의 밀령을 받고 폭탄 36개와 권총 5정을 수령하였다.
이를 김시현·김재진(金在震)·권동산(權東山) 등과 함께 안동, 신의주를 거쳐 서울로 운반하였다. 그러나 김재진이 일본경찰에 밀고함으로써 거사계획은 실패로 끝났으며 동지들과 함께 붙잡혔다. 1924년 경성지방법원에서 12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