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5년 5월 민족진영인 방정환(方定煥)계열의 조선소년운동협회에 불만을 품은 반도소년회(半島少年會)·불교소년회·새벗회·명진소년회(明進少年會) 등의 소년단체들이 모여 연합체를 결성하기로 하고 명칭은 오월회(五月會)라 하고 창립준비위원으로는 정홍교(丁洪敎)·박준균(朴俊均)·이원규(李元珪)·김흥경(金興慶)·장무쇠(張茂釗)를 선출하였다.
같은 달 31일 창립총회를 개최, 연합체 명칭을 경성소년연맹으로 개칭하였으나 일제 당국이 소년연맹이란 칭호 사용을 금지함으로써 그대로 오월회라 부르기로 하였다. 임시의장 정홍교가 중심이었으며 사회주의계열의 인물들이 주도하는 무산소년운동(無産少年運動)을 표방한 단체였다.
조선소년운동협회와는 계속 대립, 1926년 어린이날 행사를 별도로 개최하는 한편, 방정환계열의 소년운동을 천사주의(天使主義) 또는 동심주의(童心主義)라 비판하였다.
1928년 2월 오월회가 해산된 뒤 그 핵심간부들이 새로운 견지에서 소년운동을 전개한다는 취지 아래 다시 경성소년연맹을 창립하고 임시집행부를 구성하였는데 의장에 정홍교, 서기에 민병희(閔丙熙)·고장환(高長煥)을 각각 선출하였다.
같은 해 3월에는 의장인 정홍교가 전조선(全朝鮮)의 소년운동연합체인 조선소년총연맹위원장에 선출되었다. 같은 해 7월에 제1회정기대회를 개최하고 위원장에 고장환, 상무서기(常務書記)에 최영윤(崔英潤)·안정복(安丁福) 등을 선출하였다. 1930년대 이후 활동은 명백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