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는 백서(白棲). 경상북도 안동 출신. 한학자 강영숙(姜永淑)의 아들이다.
1894년 강원도관찰부의 주사로 등용되어서 근무하다가 1899년에 사직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되자 상경하여 동지들을 규합, 1907년 6월 동우회를 결성하여 항쟁을 전개하였다. 1907년 7월 헤이그특사사건 이후 노령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하여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김좌진(金佐鎭)과 항상 행동을 같이하면서 청산리전투에도 비전투원으로 참전하여 물자보급 및 교포의 선무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5년 신민부(新民府)가 결성되자 김좌진의 고문 겸 참모로 활동하였으며, 신민부의 검사원(檢査院) 위원으로 선임되었다. 1930년 김좌진이 공산주의자에게 암살당하자 그로부터 심화병(心火病)에 걸려 고생하다가 1932년에 사망하였다.
저서로는 『강역고(疆域考)』·『한말년통사(韓末年痛史)』·『자서전』 등이 있다.
1982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