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년 러시아에 볼셰비키혁명이 일어나 시베리아가 혼란에 빠지자, 1918년 4월 일본은 시베리아재류 거류민을 보호한다는 구실을 내세우고 시베리아출병을 단행하였다. 그러나 일본군은 적군의 집요한 공격으로 궁지에 빠지게 되었다.
1920년 3월니콜리스크에 적군이 공격하여 다수의 일본거류민을 학살하자, 일본군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블라디보스토크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던 한인에 대하여 대대적인 학살작전을 전개하였다.
1920년 4월신한촌(新韓村)을 기습하여 우리의 한민학교(韓民學校)와 한민보관(韓民報館) 등 주요건물을 불태우고 무고한 한인을 학살하였다.
4월에서 5월까지 자행된 일본군의 만행으로 무수한 교민이 학살되었을 뿐만 아니라, 연해주에서 활동하고 있던 최재형(崔在亨)·김이직(金理直)·엄주필(嚴柱弼)·황경섭(黃景燮) 등 한인지도자가 사살되었으며, 블라디보스토크에서 50여 명, 니콜리스크에서 70여 명이 체포되었다. 이와 같은 4월참변은 그 해 10월 만주에서 자행된 재만교민의 대대적인 학살참변과 연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