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는 청암(靑岩)으로, 감리교 신학대학에 오랫동안 재직하면서 감리교 신학과 교회의 발전에 커다란 역할을 한 교육가이자 개신교 신학자이다.
1911년 평양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홍대원이며, 어머니는 김신원이다. 조부모때부터 독실한 장로교 집안이었다. 유년 시절 장로교 계통의 숭덕학교를 거쳐 1929년 감리교계 학교인 광성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1933년 감리교신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에 유학, 1935년 칸사이[關西]학원 신학부를 졸업하였다. 같은 해 최영희와 혼인하고 1년간 도시샤[同志社]대학 신학부에서 연구하였다. 1936년 귀국하여 진남포 온정리교회, 덕동교회, 신의주교회 등지에서 전도사로 목회하다가 1939년 서부연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1942년 감리교신학교 교수로 부임했으나, 친일성향으로 흐르던 ‘혁신교단’의 노선과 갈등을 일으켜 1년 만에 교수직과 목사직을 박탈당했다. 그 후 평남 광량만교회에서 은신하다가 광복과 더불어 목사직이 회복되면서 평양중앙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하였다.
1946년 월남한 뒤 감리교신학교 교수로 부임하였으나, 1948년 미국에 유학하여 1950년 드루(Drew)대학 신학부를 졸업하고 다음 해 뉴욕 유니온신학교를 졸업하였다. 6·25전쟁 중에 귀국, 감리교신학교 교장서리로 활동하다가 1953년 교장으로 정식 취임하였다. 1977년 감리교신학대학을 정년퇴직하였으며, 1990년 노환으로 별세하였다.
1957년 진보적 성향의 기독교 잡지 『기독교사상』 창간에 위원장으로 참여하였으며, 1965년 한국기독교연합회(NCCK의 전신) 회장을 맡았다. 그 후 크리스챤아카데미 이사장(19661970), 전국복음화운동 중앙위원회 위원장, 한국 YMCA 전국연맹 이사장(19671970) 등을 역임하였으며, 1984년 한국기독교교육선교연구원 원장으로 선임되었다.
기독교윤리학이 전공이었으며 대표적인 저서로는 『인생안내』(1957), 『세속 속의 크리스천』(1968), 『기독교후기에 산다』(1990)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