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모든 형태의 교파주의와 교직 제도를 거부하고 초대교회의 회복을 강조하는 기독교 신앙공동체.
개설
설립목적
연원 및 변천
처음에는 서울을 중심으로 포교활동을 하였으나, 1898년 브랜드 부부가 내한하여 전도활동에 합류하자 수원 지역으로 내려와 포교활동을 하였다. 1900년 장안동 자택에 성서강론소(聖書講論所)를 차리면서 포교활동을 본격화했고, 1909년에는 신도들의 지원을 받아 수원 천변에 한옥으로 건축된 ‘수원 성서강당’을 세웠다. 1917년 노리마츠가 일본에서 ‘기독동신회’라는 이름으로 관청에 종교단체 등록을 한 뒤, 한국에서도 같은 명칭을 사용했다. 1919년 당시 교회의 수는 38개였다.
1921년 노리마츠가 고향 오다와라[小田原]에서 숨을 거두자 신자들이 그의 유언에 따라 유해를 가져와 수원 동신교회 뜰에 묻고 기념비를 세웠다. 노리마츠의 사후 김태희(金太熙)가 『복음신보』를 발간하고 「만인의 활로」 등과 같은 전도 소책자를 출판하는 등 활발한 포교활동을 하였으나 교세는 점차 약화되었다.
광복 이후 전국 각지에서 모임이 활성화되면서 교세가 증가하였지만 교인들 사이에 교리논쟁이 일어나 분열의 조짐을 보였다. 교세가 가장 큰 지역은 서울과 수원으로, 서울 지역의 모임은 1977년 ‘기독동신회 서울중앙교회’라는 이름을 내걸었고, 수원 지역의 모임은 1979년 ‘수원동신교회’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기능과 역할
현황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한국기독동신회100년사』(한국기독동신회100년사편집위원회, 기독동신회, 2003)
- 『일제의 종교침략사』(한석희, 김승태 옮김, 기독교문사, 1990)
- 기독동신회 서울중앙교회(www.brethren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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