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이후 혼란한 시대 상황에서 개신교계의 젊은 진보적 지식인들이 주도하여 만든 신앙운동 단체로 한국 개신교의 신학 발전과 군사정권 시대 민주화 운동의 밑거름이 되었다
기독교 복음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통하여 한국 사회의 혼란과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48년 1월 12일 서울시 종로에 위치한 기독교대한복음교회에서 ‘임마누엘단’의 창립총회가 개최되었다. 창립 당시 회원은 복음교회 목사 지동식을 비롯하여 장하구·홍태현·김철손·이시억·문익환·문동환·이영헌·김덕준·박봉랑·김관석·장준하·유관우·전택부 등이었다. ‘임마누엘단’은 교회와 학교 주변에 전도지를 뿌리는 한편, 전차의 광고란에 전도문과 경고문을 부착하였다. 1950년 6·25전쟁의 발발로 활동이 일시 중지되었으나 1950년대 후반부터 모임이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하였다. 이때 새로운 회원들이 가입하였는데 박대선·김정준·김찬국·백리언·문상희·유동식 등 각 교단신학교의 신학자들이 대거 참여하였다. 이때까지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 교회와 사회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지만 1960년대 접어들면서 활동이 침체되었다.
1956년부터 월례 모임을 갖고 회보를 발행하였지만 조직의 자율성을 강조하여 회칙이나 회장을 두지는 않았다. 그리고 한국교회의 당면과제에 대한 신학적 해명을 목표로 해마다 ‘임마누엘 신학강좌’를 개최하였다. 제1회 신학강좌의 주제는 ‘성령론’이었으며, 제2회는 ‘기독교 윤리관의 수립’, 제3회는 ‘종말론’, 제4회는 ‘예배론’이었다.
1949년부터 ‘임마누엘 복음주의 총서’가 발간되었다. 제1집은 마틴 루터의 『그리스도인의 자유』, 제2집은 칼 바르트의 『그리스도인의 생활』, 제3집은 칼 바르트의 『교회와 예배』로서 외국 신학자들의 저작을 번역하여 소개한 것이었고, 제4집 『구약성서의 인간관』과 제5집 『성령』은 국내 학자가 저술한 것이었다.
한편 1957년부터 성서 번역을 시작하여 1961년 『새로 옮긴 신약성서 1. 마태의 복음서』라는 이름으로 마태복음이 출판되었는데, 이는 국내 신학자들의 노력에 의한 최초의 번역서였다.
한국 개신교 신학의 수준을 향상시키고, 1970~80년대 민주화 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개신교 진보 진영의 모체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