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해방 이후 정명여자중학교 교장을 역임한 교육자. 여성운동가.
개설
생애
1924년 조선여자기독교절제회 총무로 취임하였으며, 1927년에는 근우회에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 일제 말에는 대성학원과 흥아가정여학원 원장을 역임하였으며, 광복 후 경성여자고등기술학교를 설립했고, 1949년에는 정명여자중학교를 세웠다. 1952년 정명여자중학교 재산을 개신교 재단인 유하(有廈)학원에 기증하였고, 그 재단에서 세운 서울예술중고등학교의 명예교장과 이화학원 명예이사로 추대 되었다. 1963년에 별세하였다.
활동사항
금주에 대해 강연할 때에는 술의 독함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방법을 사용하는가 하면, 총독부에 들어가는 엄청난 규모의 주세(酒稅)를 언급하면서 민족의식을 일깨우기도 했다.『기독신보』(1930.4.30.)에 기고한 「조선의 금주운동」이라는 글에서는 술을 “탄환 없는 대포”에 비유하고, 금주운동을 “육을 살리고 영을 살리는 운동이며 죽어가는 조선을 살리는 운동”이라고 설파했다. 근우회 사건과 관련하여 1929년 총무직을 사임한 뒤 교육계에 종사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교회 처음 여성들』(이덕주, 홍성사, 2007)
- 『한국 기독교 여성운동의 역사』(윤정란, 국학자료원, 2003)
- 『한국감리교여성사』(장병욱, 성광문화사,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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