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일제강점기 감리교신학교교장, 기독교조선감리회연맹 이사 등을 역임한 목사. 신학자.
생애 및 활동사항
1938년 5월 8일 '내선인 기독교인의 단결과 총후보국'을 목적으로 조직된 내선인기독교연합회에 평의원, 1940년 10월 국민총력 기독교조선감리회연맹 문화부장을 거쳐 1941년 3월 양주삼(梁柱三) 등과 함께 이사를 맡았다. 같은해 12월 동양지광사(東洋之光社) 주최 '미영타도좌담회(米英打倒座談會)'에서 「앵글로 색슨인의 유색인에 대한 태도」에 대해 발언했다. 이외에도 「새사람을 입으라」(『조선감리회보』, 1942년 1월) 및 「기독자의 신각오」(『기독교신문』, 1942.6.17) 등에서 일제의 침략전쟁에 대한 협력을 촉구했다. 해방 이후인 1946년 9월부터 정동제일교회를 담임했고, 재건파와 부흥파로 갈라진 감리교회를 1949년 대한기독교감리회 통합·탄생시키는데 공헌했다. 1953년 6월 11일 사망했다.
참고문헌
- 『친일인명사전』1(민족문제연구소, 2009)
- 『정동제일교회구십년사』(정동제일교회역사편찬위원회, 1977)
- 『기독교신문』
- 『동아일보』
- 『매일신보』
- 『조선감리회보』
- 『조선총독부관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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